[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6)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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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6)

양지는 긍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의 답답함은 큰 문을 더 크게 확장시키는 저력을 발생시키니까. 긴급동의 하듯이 양지는 자신의 궁금증을 끼워 넣었다.

“아들들의 눈에는 서로의 생활도 불편하셨을 부모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는지 궁금해요.”

“아, 그거 참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상대방의 겉모습을 탓하시기보다 서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 상처나 자존심을 이해하셨던 것 같애요. 이건 어릴 때 처음 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환하게 상기되는 광경인데, 잠자다 일어난 제 동생이 생뚱맞게 성냥불 장난을 하다 이불에 불이 붙었어요. 자다 깨서 눈을 뜬 어머니가 아무리 기겁한 상황을 외쳐보았자 노동일로 지친 아버지가 알아듣고 일어나실 리 없죠. 그제야 처음으로 아버지의 손목과 자신의 손목에 연결된 끈을 어머니가 잡아당기는 걸 보았지요. 아버지는 당신이 얼른 못 일어나서 애태운 어머니께 미안하다는 뜻으로 어머니의 어깨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곤 했는데 이런 모습은 저의 어린 눈으로도 참 인상적인 아름다움 하나를 깨우쳐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밭고랑을 만들면 어머니는 거기다 씨를 뿌리고……. 지금 생각하면 참 힘들고 눈물겨운 광경이었을 텐데도 어린 제 눈에는 성실하고 참된 부부의 한없이 평화스럽고 목가적인 모습으로 잔상이 그려져 있으니, 자식은 참 철부지의 대명사가 아닌가 싶어요. 휠체어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니 어머니를 지게에 태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밭을 내려올 때면 동네 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이 산 저 산에서 뻐꾹새가 우짖었던 기억도 나네요.“

이윤서는 자기 이야기를 마치 현실이 아닌 동화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 같이 했다.

양지는 손에 쥔 땀을 양손을 비벼 증발시키면서 이윤서를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를 그 소탈함에서 관찰한다. 그에 비하면 갖출 것 다 갖추고 살았던 양지 자신의 부모 관계나 현실은 어떠한가를 저도 몰래 비교하다 얼른 지우곤 했다. 상대방의 결점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말이 또렷하게 되새겨지며 넓이와 상관없는 토양의 질이 어떤 생물을 길러낼 수 있는 지에 대한 커다란 교훈도 얻는다.

이윤서의 환경을 알게 됨으로 더욱 친숙해진 양지는 이윤서와 같이 저녁도 먹었다. 그가 먼저 장소를 정해놓는 일방적인 리드였지만 싫지 않았다. 반보 쯤 뒤따라 걸으면서 바라본 탄탄한 등 넓이의 듬직함은 현태라면 고개 들었을 거부감을 어느새 흐려놓고 순순히 따르게 한다.

비뚤어지려면 얼마든지 비뚤어질 수 있는 여건인데도 이 남자가 반듯하게 잘 성장한 이유는 그 부모들의 화합과 풍부한 긍정이 산소 작용이 됐을 것에 대한 외경심 때문이다. 하므로 성장의 자양분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양지에게 속 깊은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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