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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론] 서민의 나라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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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3  16: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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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면서 부채 없고, 월수입 500만원 이상, 중형차 이상, 예금 1억원 이상, 해외여행 연1회 이상 등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심리적 중산층의 모습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소득 상위 10%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서 한두가지라도 미달하면 스스로 중산층이 아니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다.

실제 현실과 인식 사이에는 격차가 크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소득계층별 분포를 보면 지난해 상위(중위소득의 150% 이상) 19.7%, 중위(50~150%) 65.7%, 하위(50% 미만) 14.7%였다. 반면 설문조사에 의한 주관적 인식은 상류층 2.4%, 중산층 53.0%, 하류층 44.6%다. 주관적인 중상류층은 줄고, 하류층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 인식이 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서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86%가 ‘나는 서민’이라고 답한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보통사람은 물론이고 충분히 가진 사람들도 “우리 같은 서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비교 대상이 늘 ‘나보다 더 가진 사람들’인 탓이다. 억대 연봉자들 간에도 빈부격차를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연봉 1억원은 2억원이 부럽고,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유럽 여행자가 부러운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으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눈치빠른 정치인들은 이런 인식의 틈새를 비집고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거나 득표활동에 활용한다. 세상을 강자와 약자로 나누고 약자의 로빈후드를 자처하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친서민 정책’을 내세우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좌우 구분도 없고, 진보 보수도 없다. 서민물가, 서민주택, 서민금융, 서민통신비, 서민채무경감 등등... 하지만 어느 정권에서도 서민들이 행복해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토록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되레 물가는 오르고, 집값은 뛰고, 취업은 힘들고, 살기 빠듯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서민을 대상으로 허공에 산탄총 쏘듯 무분별한 정책을 편 결과다.

본래 서민은 성(姓)도 없고 벼슬도 없는 사람을 뜻하는 과거 왕조시대의 언어다. 사농공상, 관존여비에다 신분이 세습되던 시대의 무지랭이 백성을 가리켰다. 요즘 ‘나는 서민’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은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자포자기의 한 단면일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국가 의존적 국민의식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경향이 있다. 자유 대신 평등을 주장하고, 자유 민주주의 대신 정부개입 사회주의가 득세하는 근본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개인의 삶과 복지를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여기는 것이다. 공짜는 부자도 좋아한다. 자기 자식이 공부 못하는 것도 ‘나라 탓’이라는 사람까지 있다.

결국 해답은 경제와 사회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려지는 애담 스미스는“노동자의 행복감은 임금의 절대 수준이 아니라 임금이 정체됐느냐, 상승 추세냐에 달렸다”고 갈파한 바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저절로 늘어날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뜻도 모호한 서민이란 정서적 용어를 남용해 국민 모두를 서민으로 만들고, 국가 전체를 서민의 나라로 만드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개척하려는 개개인의 가치를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된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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