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닭에게 절을 한 적이 있다. 닭은 새벽을 여는 동물이니 닭에게 절을 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나면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안채와 동떨어져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게 그렇게나 무서웠다. 피아노 선율 같은 늦여름의 풀벌레 소리도, 담장을 넘어가던 겨울의 찬바람 소리도 무섭게만 들렸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했다.
무서움을 견뎌내기 위해 할머니를 깨워야 했다. 손자 때문에 새벽잠을 설쳐야 했던 할머니는 닭에게 절을 하라고 말했다. 일주일,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횃대에 올라가 잠을 자고 있는 닭에게 하루에 두 번 씩 꼬박 절을 했다.
예전부터 닭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닭고기를 먹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게 더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닭고기뿐만 아니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더욱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 시절, 고기는 명절이나 제사 때나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육식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닭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닭고기가 한 뼘도 못되는 비좁은 공간에서 모가지만 쑥 빼 놓은 채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그렇게 됐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고 온갖 항생제를 먹이고 수시로 약을 투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더욱 그랬다.
가축은 사람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 이들에게 건강하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날개를 퍼덕이며 횃대에 오르고 마당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새벽이면 목청껏 울어대던 수탉의 모습이 그립다. 그 늠름하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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