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7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70)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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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70)

오빠 목소리의 무게가 매지구름처럼 떨떠름하게 양지를 에워싼다.

“차라도 한 잔 내올까요?”

박절한 선언을 피하고 싶어 양지는 딴청을 부리지만 오빠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앉아. 내가 아무래도 큰 실수를 동생한테 저지른 것 같다. 나는 다만 체격은 작아도 그런 장한 뜻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만 했는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수연이 얘기예?”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에 대한 양심 있는 여성의 반감에 대한 설명도 당연히 했지. 다른 건 다 좋았단다.”

“그렇다면..... 대의명분이나 호연지기가 점점 사문화되는 개인주의적인 시류 탓도 있을 거고. 그렇지만 그 사람도 그런 정도의 소인배였다니 제가 먼저 팔자소관으로 돌리는 게 났겠네요.”

“아, 동생 그 사람 개인에 대한 오해는 하지 마. 진짜 이유는 따로 있고. 그 친구도 동생을 많이 아쉬워했어.”

결과는 이미 파탄이지 않은가. 고개를 들면 솟구친 눈물이 들킬 것 같아 양지는 괜한 손동작으로 딴 짓을 했다. 평생 해보지 않은 외도로 자존심만 상했다.

“그쪽 부모가 철학관에 가서 두 사람 궁합을 본 모양이야.”

아주 뜻밖으로 전해진 이유였다. 아직도 그런걸 보고 자식의 장래를 결정짓는 사람이 있느냐 우길 수도 있지만 여기는 아직 고풍이 남아있는 지역이며 어머니도 호남을 시집보낼 때 궁합이 안 좋다며 극구 반대를 했다. 호남이처럼 죽고 못 사는 연인 관계도 아니니 무시할 수 없는 절차로 보는 게 옳았다.

“그 사람이 직접 그랬어요, 오빠한테?”

“아주 많이 미안해서 본인은 못하겠다고, 그렇지만 동생의 영민한 눈빛이며 현대적인 사고와 진취성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발견 못할 매력으로 인상 깊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꼭 전해 달라 부탁까지 했어.”

“그만하면 됐어요 오빠.”

양지는 부모에게 빚진 것이 많다는 이윤서의 말을 효심 가득한 긍정으로 받아들였던 만큼 그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초극할 수 있는 미친 사랑이 아닌 점이었다.

“그 사람 말이 자기는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데, 그 뜻은 동생도 잘 이해해 줄거라 믿는다는 걸 보면 동생이 그렇게 자존심 상처받을 상황은 아이라고 나도 인정해. 동생은 이번 일을 충분히 갈망할 사람이니 하는 소린데 인연이 아니면 하는 수 없지. 동생의 변화된 마음을 알았으니 더 훌륭한 사람으로 다시 찾아볼께. 내가 또 아는 사람은 좀 되니깨 인맥을 동원하면 동생하고 찰떡궁합 엿방석으로 딱 맞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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