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절차적 정당성’, 우려되는 책임회피 정치
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 교수)
[경일시론] ‘절차적 정당성’, 우려되는 책임회피 정치
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8.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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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국가 생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국가생존 이념적 토양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서구 민주주의 이념, 제도의 형성과 발전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과 연결된 정치 사회적 발전에 기초한 것이라면, 한국에서는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독재로 이어지는 독특한 역사적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항상 달성해야 할 이념적, 제도적 목표로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민주주의는 사회 각 계급과 계층이 분단과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과정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정치조직을 미처 가지지 못한 ‘차이의 정치’에서 아직도 혼란스러운 접점을 찾고 있다.



‘차이의 정치’, 아직 혼란 속에

한국 민주주의의 범위는 안보환경도출과 사회조직의 문제로 확대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시민권이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을 넘어 문화권, 성적 선택권,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위한 기본권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런 토양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에 차선의 접근방식인 ‘절차적 정당성’이 강조되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이 제기되는 이유 하나는 어떤 문제를 결정하는 절차에만 먼저 합의하고, 그 절차를 충실히 따랐다면 내용적으로 의견을 달리해도 결과에 승복하자는 것이다. 내용적 결론을 전제하지 않고 결정방식만을 논의하기 때문에 합의 가능성이 조금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현 정부가 제기한 사드 배치에 대한 국회 동의나 환경영향평가가 그 요체인 ‘절차적 정당성’ 문제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북한이 잇달아 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이미 결정된 사안을 새 정부가 뒤집으려 한다는 비판이 일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이미 결정된 사안은 사후 ‘절차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은 민주주의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있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향후 사드배치 처리과정의 큰 줄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결정된 사안, 사후 ‘절차적 정당성’ 얻기 어려워

그런데 ‘절차적 정당성’ 논의의 현실적 문제는 논의의 범주에서 국가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는 암묵적 국제정치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양립하느냐 하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영구 중단할지, 아니면 재개할지를 판가름하기 위한 ‘공론조사’ 중 1차 전화조사가 시작됐다.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위원회는 조사 수행업체로 선정한 한국리서치 컨소시엄을 통해 집 전화 10%, 휴대전화 가상번호 90%, 혼합방법으로 2만 명의 응답을 받고, 약 보름 동안 진행한다. ‘절차적 정당성’에 충실한 과정이다. 그러나 국제 원전 시장은 사실상 원전 대표국가로 떠오른 한국을 필요로 하는 구조다.

첫째, 원전 산업이 침체된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이 원전 부품 교체나 수리·운용 등에 다른 나라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존하기엔 불안하다. 이에 함의는 국가내 ‘절차적 정당성’ 논의가 한 나라 안에 그치지 않고 그 파급 범위가 국제정치적 맥락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 원전은 핵무기 제조에 쓰일 수 있는 핵물질이 원전 관련 시설에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에 핵 안보(nuclear security) 측면에서 중요하다. 바로 핵 비확산 구도의 존속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한국의 외연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는 원전의 환경 산업측면 이외에 군사·정치·외교적 잠재력이 ‘절차적 정당성’에 국제정치 주도국가의 유·무형 압력을 받게되는 현실적 개연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치주체가 손을 놓는 ‘절차적 정당성’은 책임 회피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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