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7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72)
  • 경남일보
  • 승인 2017.08.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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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72)

앞으로의 이야기는 나 수연의 눈으로 직접 보았거나 들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 열 살쯤이었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양지 이모는 고종오빠의 장학재단 일을 맡아했고 아울러서 목장일도 도맡게 되었다. 호남이모는 이모대로 기적 같은 부의 축적(뒤에 설명되지만)으로 여러 형태의 사업까지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다.

참,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두 만남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통해서 외국에서 돌아 온 귀남이모와 같이 살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자칫 잊혀진 채 사라져갈 뻔했던 용남이모의 존재가 건강이 나빠진 것을 계기로 자기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나의 이종오빠 용재네와의 연결이다. 이들의 출현은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들과 그 반대의 사람들이 보이는 자존감과 정체성 확보에 대한 끝없는 노력이 어떤 형식으로 삶과 인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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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의 파도를 박제시킨 한 컷의 사진과 같다. 산줄기를 말했지만 산 구비 구비에 잠재한 숨은 뜻을 다 설명하기 쉽지 않듯이 세월 십년이 흘러간 흔적도 그렇다. 나이는 인간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친다. 물러설 때 나설 때 멈춰있을 때,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나타나기도 한다. 한때나마 요란뻑적지근했던 ‘우먼파워’의 존재도 그 중 하나다. 몇 몇 남은 회원들도 마흔이 넘고부터 잠적한 듯 수녀원으로 또는 아예 이민을 갔다는 소문이 바람결에 흘러왔으나 그 나머지 소식마저 점점 종적을 감추었다. 모이면 뭘 해. 울고불고 술이나 마실 걸. 누군가가 자조적으로 내뱉었던 말이 그들의 현주소였다.

밥버러지 같은 년들, 하나도 안변했다. 딸년이 술장사나 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친구들 있는데도 못 간다면서 아버지가 했던 말이다. 지난 십 년의 경과를 눈으로 보면서도 아버지는 늘 흘긴 눈길로 딸들을 비아냥거린다. 귀남이 돌아와서 정신없는 짓을 하는 것도, 호남이 꽤 여러 개의 가게 운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버지의 눈에는 여전히 홑으로 사는 딸들의 궁상맞은 신세 쪽으로만 묶여 보이는 것이다.

“나이만 처먹었지 해놓은게 뭐 있나. 자식을 키우면서 옹골차게 살아야 될 힘찬 나인데 겨우 제 입치레나 하고 빌빌거리는 꼴이라니, 쯧쯧…….”

양지는 가슴에 박힌 큰 말뚝이 된 아버지의 지청구를 상기할 때마다 괴로웠다. 아버지의 이 말은 아픈 깨달음을 주는 각성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참새 세 마리가 굶어 죽어야 종손이 굶는다는 절대비호의 골수관념이 빚어낸 시대착오적 신념의 발현인 것을 아버지는 간과하고 있음이 다. 그런 쪽으로 보면 사실 아버지만큼 자기 인생을 골차게 보내는 이도 없을 것이니 만만한 자식들을 퍼부을 거리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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