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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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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1  00: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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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473 사본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73)

아버지는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을 인정한다. 양지가 얼마나 정성스러운 손길로 소들을 돌보는지. 오빠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지. 새롭게 눈뜬 생명에 대한 외경심으로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동식물을 바라보는지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대로 그 굴욕의 나날은 또 뚜렷한 목표로 양지의 심중에 자리매김 됐다. 의식이 있다면 누군들 자기 인생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겠는가.

제 아무리 능력자라 해도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눈썹 한 오라기도 어쩌지 못하는 지배를 받게 된다.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은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로 환경타파를 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일 것은 분명하다. 좌절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녹슨 대못 같은 한의 힘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를 위시한 자매들과 주위들, 또 자신의 영혼을 지배했던 과거를 되돌려보면 시나브로 짙어지는 어둠 속이나 깊은 물속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숨 막히고 서럽고 억울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소리 질러도 자신을 구할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똑똑한 인지력만이 그녀를 일깨우고 부추기는 힘이었다.

‘아버지 두고 보세요. 아버지가 내린 핍박과 독즙으로 제가 어떤 딸이었던가를 꼭 보여드릴 겁니다.’

대찬 사내처럼 언니들을 독려하는 호남은 나름 사업가 티를 보이기 시작했고 정신장애를 가진 귀남으로 인한 바람 잘난 없는 일상도, 정수리가 얼추 이모들의 턱을 받치게 커 오른 수연이까지 맏자식으로 양지가 자신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됐다.

그녀는 오늘도 오빠가 준 월급봉투를 받는 즉시 은행으로 갔다. 완공 된 진양호 댐에 담수가 시작되자 스멀스멀 언덕으로 기어오르던 수몰지역에서 본 방방한 수면처럼 마침내 만만찮은 자금으로 활용될 저축. 장마오이처럼 죽죽 잘 자라지 않는 금액이 보람에 비하면 늘 미흡해서 안타까웠으나 언젠가는 꼭 이룩되리라, 꺼뜨리지 않는 희망의 촛불로 허전한 속을 달랜다.

그렇게 보낸 십 년 내공은 의연한 중년으로 거듭나게 그녀를 길들여간다. 가슴에 품고 있는 올곧고 건강한 꿈나무가 있는 한 비록 초라한 외양일지라도 겉만 따지는 눈길에는 퇴보한 듯 보일지라도 비원의 원정처럼 개의치 않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였다.

쓰든 달든, 어떤 건 천천히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스치면서 나아가다보면 어느 덧 그곳에 닿아 목도하게 될 결과, 크든 작든 어떤 건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될 또 그 결과가 비록 미흡하더라도 결국 개인에게 주어진 인생 몫이라는 깨달음으로 수용할 때까지 오직 한길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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