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자연으로 돌아와 살다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경일춘추]자연으로 돌아와 살다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9.0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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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인
벌써 거의 10년이 흘렀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 5년째 거주하고 있던 나는 당시 심각하게 귀국을 고민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귀국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러나 귀국했을 때 당장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때 큰 도움을 준 것은 친구도 가족도 아닌 고시(古詩) 한 수였다. ‘少無適俗韻(소무적속운), 性本愛丘山(성본애구산) / 誤落塵網中(오락진망중), 一去三十年(일거삼십년) / 羈鳥戀舊林(기조연구림), 池魚思故淵(지어사고연) / 開荒南野際(개황남야제), 守拙歸園田(수졸귀원전)’

(어려서부터 세속에 어울리지 못하고, 성품이 본시 산을 사랑했거늘/잘못하여 속세에 빠져, 삼십 년이 가버렸네/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못 속의 물고기도 옛 연못을 생각하니/(나도)황폐한 남쪽 들을 개간하여, 전원으로 돌아가 분수를 지키며 살리라)

‘귀원전거‘(歸園田居)첫 수 머리에 나오는 글로 1600년 전 도연명(陶淵明)이 쓴 시다. 감히 ‘이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구나’라고 공감하며 ‘돌아옴’에 대한 피안(彼岸·세속의 초월)으로 위안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며 산청을 떠났으니 나도 세속에서 떠돌며 ‘일거삼십년’이 된 셈이다. 그러나 돌아온 고향은 그렇게 목가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았다. 농부의 삶을 살고자 하나 말만 시골 출신이었지 해 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한자 풀이대로 남산 아래 콩을 심었더니, 풀만 무성할 뿐 콩 싹은 드문드문하네. 나의 첫 농사는 꼭 이랬다.

만 9년이 지난 지금도 내 입으로 농부라고 우겨야만 되는 여전히 게으르고 형편없는 시골농사꾼으로 살고 있다.

가끔 친구들이 “시골생활 어때?”라고 물어오면 “삶의 수준은 다소 낮아졌지만, 삶의 질은 훨씬 좋아 졌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지금 농촌은 퇴직자의 귀촌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귀농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다. 옆 동네로 이사만 가도 한동안 낯설어 하는데 심지어 생활환경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도 제로 섬(zero-sum) 게임과 같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내어 놓아야만 한다. 조금만 나를 내려놓고 수졸(守拙·분수를 지키다)을 한다면 그저 삶은 즐거울 것이다.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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