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76)
“이 사람아, 너무 볼촉시리 그라지 말게. 그래도 우짜것노. 여게 안되모 저게도 찔러보고 그래 갖고 제 길 찾아가는 거 아이가. 이 번 한 번만 우째 주게. 내 다시는 이런 에럽은 부탁은 자네한테 안함세.”
“형님한테 다시 한 번 듣기 싫어도 바른 말 하는데요, 요새는 농사도 배운놈이 더 잘 짓는다던데 그 놈 푹 쑤시서 바람 빼갖고 곱다시 형님 뒤따라서 농사나 짓게 하소. 지가 무슨 재벌집 둘째 아들도 아니고 피땀 흘리서 농사짓는 부모 등골만 빼 묵는 거 아니요. 진날 갠날 없이 에미 애비는 들에 사는데 지는 기생 오래비 모냥으로 쪽 빼입고 댕길 때 알아봤소. 형님, 내 들은 소리 하나 할께요. 어느 고물장사 애비가 똑 형님 모냥으로 자기는 먹을 것 하나 몬 먹고 입을 것 하나 제대로 몬 입고 아끼면서 쎄빠지게 공부를 시키논깨 참 양복입고 책상에 앉아 일하는 신선한 직장에 취직을 했대요. 이런 아들이 얼마나 장하고 자랑시럽은지 보고 싶어서 찾아갔더니 지 애비를 본 이놈이 머슴이 심부름을 왔다고 옆 사람한테 그라더랍디다. 형님 새끼도 그 짝 안 날줄 아우? 괜히 헛다리 잡지 말고 내 말 명심해서 처신을 해요.”
“지 놈이 내 말 들을 놈도 아니지만 새옹지마란 말도 있고 칠전팔기란 말도 그런 예가 있은께 나온 말 아이겄나. 자네도 알지만 이놈을 내가 잘못 갤친거는 인정하네. 제 누부들은 어차피 남의 집에 시집 갈 것들인깨 넘 존일 하는기라 공부보다 밥이나 시키묵고 살림이나 배우라꼬 잡아 앉히제. 새복부터 밤늦게 까지 손발톱이 모지라지게 지은 농사, 리야카에 실고 나가서 지 에미나 나나 돈 벌어 오모 돈이나 잘 쓰고 부잣집 도령님 행사하면서 컸제. 그게 또 내가 애비 노릇하고 사는 낙이었고. 참, 내가 하고 산 고생 생각해서 씻고 벗고 하나 뿐인 아들이니 제 놈은 우짜든지 손톱 밑에 흙 안 옇고 편히 살기를 바래고 공디맀제.”
“그러게 답답하단 말 아니요. 알면서 와 그라요. 제발 그 놈한테 처옇을 돈 있으모 아지마씨 합죽하게 썩은 이빨이나 해주고 성님 옷이라도 누르팅팅하게 흙칠갑 안된 새 옷 한 벌 사 입는 기 났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괜한 말인 줄 아우?”
주인남자가 더 할 말 없다는 듯이 일어서자 농부는 번개같이 매달리면서 속엣 말을 털어놓았다.
“아이구 아이구, 이 말은 참말로 안할라 캤는데 그 놈이 간밥에 술 쳐 묵고 환장해서 제 마누래를 팼는데 병원에 누워서 이혼하자꼬 나온단다.”
“허허, 내 말이 그 말 아니요. 전에도 가시나 건드리 갖고 언내 떼고 돈 물어주고, 또 경찰서도 한두 번 갔다 왔소?”
“글치만 우짜것노. 사업은 안 되고 지 안사람은 사사건건 시비만 걸고 썽이야 나것지만 꾹 참아야 되는 긴데 이놈이 그걸 몬 한기라.”
“괜히 연대보증은 서줘갖고, 그것도 골치 아파죽겠는디. 좌우간 나는 안돼요. 한두 번도 아니고, 내가 뭐 형님네 은행이요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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