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 비둘기는 날 수 있는 새였다
성유진(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대학생칼럼] 비둘기는 날 수 있는 새였다
성유진(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9.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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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진
황당한 일을 겪었다. 비둘기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와 함께 신호를 기다린 뒤, 신호가 바뀌자 비둘기는 총총 걸어갔다. 나는 발짓을 크게 해 비둘기 주변을 내리쳤다. 놀란 비둘기는 그제야 날아갔다. 하지만 짧은 비행이었다. 비둘기는 다시 걸어갔다. 아마도 비둘기는 나는 법을 잊은 듯 했다. 자신이 날개를 가진 ‘새’라는 걸 망각했나보다.

개강한 첫날, 친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직도 학보사 일에 바쁘냐?” 방학 내내 밤낮이 바뀌어 오늘 밤을 꼴딱 샌 탓에 친구는 눈이 빨갰다. 영락없는 비둘기였다. “집에서 휴대폰이나 보면서 누워있는 게 최고라고!” 친구 비둘기는 서둘러 집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자리에는 쓸쓸한 냄새가 났다.

비둘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다. 술에 찌든 비둘기, 게임에 미쳐 눈이 빨개진 비둘기, 혹은 어딘가를 향해 가고는 있지만 눈이 풀린 비둘기. 주위에서 찾기 쉬운 유형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목표’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짧은 비행밖에 하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틀에 박힌 공교육에 찌들어 창의성이 없는 시험을 12년 내내 치른다. 전공 또한 하고 싶은 전공보다는 성적에 맞춰 진학한다. 꿈에 부풀어 온 대학도 다를 바 없었다. 교수들이 부르는 답을 시험지에 옮겨 적는다. 휴학도, 자퇴할 용기도 없어 꾸역꾸역 졸업장을 받았지만 현실은 ‘남들 다하는 공무원 시험’이다. 어렸을 땐 장래희망 작성란이 두렵지 않았다. 과학자, 의사, 화가 등 다양한 미래를 그렸다. 세상을 바꿀 생각을 끊임없이 떠올렸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따라왔지만 이상한 점을 느껴 뒤돌아 봤을 땐 너무나 커다래진 자신의 몸통을 보았다.

그러니 비둘기의 잘못은 없다. 또한 누구도 그들을 욕할 자격은 없다. 그들은 모두 틀에 박힌 육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다만 풀이 죽은 비둘기를 응원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넌 충분히 날 수 있는 새라고, 육지는 네가 살 곳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다. 오늘도 비둘기들은 끝나지 않는 새벽을 달리고 있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날갯짓은 안쓰럽지만 대견하다. 고민하는 비둘기를 응원하자. 더 멀리 날 수 있도록.

성유진 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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