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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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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6  23: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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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77)

얀정 없는 어투로 결론을 내린 주인은 자리를 모면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노인을 피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노인은 사정하는 자세로 꿇어 세우고 있던 무릎을 퍼더버리며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탁자를 짚고 앉은 노인의 검은 안색이 맥을 놓아버린 듯 창백하게 변해갔다.

한참을 맥없이 혼자 앉아있던 노인이 부스스 일어나는데 신발이 놓인 곳까지 가는 짧은 거리인데도 곧 쓰러질 듯 힘이 없어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호남의 시야로 문득 째보아재를 만나 거절당하고 돌아 설 때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호남은 황급히 노인을 뒤쫓아 나갔다. 노인은 더 걸을 힘조차 소진되고 없는지 가게 앞 시멘트 축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다시 안으로 들어 온 호남은 두어 잔 남은 소주병과 정리하다 모아 둔 고기 안주 몇 점을 챙겨들고 노인에게로 갔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이 담긴 목멘 눈물을 머금고 호남이 주는 소주를 마셨다. 내게도 딸 주영이 있는데, 해서는 안 될 상상이지만 훗날 만약 저런 경우를 당한다면 부모의 심정은 똑 같을 거라 생각하니 찡해진 가슴이 진정되도록 술과 안주를 권했다. 그 날 호남은 우선 이거라도 갖고 가서 급한 불이라도 끄라며 노인이 필요한 돈 일부를 빌려주었다. 곧 갚겠다며, 이런 은혜는 죽어도 못 잊을 거라며 노인은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후로도 노인은 몇 번이나 호남의 돈을 가져갔다. 처음에는 어차피 어디서든 둘러써야 할 돈이라며 농산물 판돈으로 꼬박꼬박 이자도 주었다. 호남은 또 그녀대로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도와준 댓가이며 은행에 넣어놓는 것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받는 맛이 오지고 고소했다. 그때 튼 인연으로 노인의 피땀으로 모은 재산인 땅문서는 한 장 한 장 호남에게로 넘어왔다. 맨입으로는 염치없으니 우선 이거라도 받아놓으라고 내놓으니 아드님 사업이 얼른 잘 풀려서 곧 찾아가기를 바랄게요, 덕담하면서 받아들였고 제 손에 돈이 없을 때는 남에게 빌려서라도 필요한 금액을 구해주었다.

그런 연유로 그 사람에게 말하면 돈을 구할 수 있다는 노인의 귀띔을 들은 목돈이 필요한 농가에서 하나 둘 호남을 찾아왔다. 사주에 없는 돈놀이꾼이 되어 꽤 짤짤한 수익을 올리며 호남의 주머니는 부풀어갔다. 몇 년을 거치는 동안 상추밭 부추밭뙈기까지 호남에게로 들고 오는 사람 숫자까지 늘었다. 고난에 처한 이웃을 도운다는 작은 뜻을 빌미로 호남은 돈은 돌아야 하는 물과 같고 돈이 돈을 벌며 돈이 곧 인심이고 사람노릇을 하게 만든다는 체감을 했다.

속에 감춘 그런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호남은 점점 옛날의 자신감을 회복했고 양지에게도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돈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모 되지. 언니야 걱정마라 설마 언니 니 하나 못 멕여 살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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