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박경리 동상, 그리고 북유럽 이야기(13)
필자는 지금 오슬로에 있는 그랜드호텔 1층에 있는 그랜드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한 잔 시켰다. 이 카페는 입센이 살아 있을 때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나타나 정해진 그 자리에서 차를 마셨던 카페이다. 입센은 1828년 태어나 1906년에 이승을 떠났으니까 지금부터 111년 전에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창쪽의 그 자리는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입센의 영혼이 와서 앉는 자리라 하여 비워 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시간대에 카페를 방문했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대신에 그 시간에 입센이 쓴 ‘인형의 집’을 머리 속에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주인공 노라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러나 스스로 자각이 온 것은 자신은 결정권이 없고 인형처럼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냥 있으면 되고 사랑 받으면 되는 것이지만 자결의 영혼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자각인 것이었다. 노라는 그리하여 한 지아비의 아내이기 전에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 전에 그도 한 사람의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 가정을 떠나 문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그래서 그는 정든 그 집을 버리고 나선다.”
이런 와중에 노르웨이 여권연맹에서는 ‘우리의 지도자 입센선생을 모시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입센에게 여성인권에 대한 강연을 요청했다. 입센은 강연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장하신 여권연맹 회원 여러분! 저는 이 자리 섰지만 여러분의 편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여러분의 주장이나 현안문제가 제게는 그 많은 인간 문제의 하나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옹호한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분투를 기대합니다.” 회원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려하면서도 일단 박수부터 치면서 환영의 물결로 화답을 했다.
카페라떼를 천천히 아껴가면서 마시는데 카페에는 주로 여행객들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다.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유로화를 쓰지 않는 노르웨이 통화에 대해 불편해 하면서 “유로화로 차를 마실 수 있느냐?”고 카운터 아가씨에게 물었다. 필자에게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유로화는 쓰지만 거스름돈은 노르웨이의 크로네 동전을 준다고 말했다. 유로화를 받아 손님을 확보하면서 잔돈은 자기네 나라 동전을 주면 이 나라를 떠나기 전에 다 소비하고 갈 것이라는 계산인 것처럼 보였다. 마침 이때 인형처럼 생긴 숙녀 한 사람이 필자의 앞을 지나 예의 그 ‘입센의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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