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베며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풀을 베며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8.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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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집 뒤뜰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보며 제때 풀을 베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풀이 저리 자라기 전에 미리 베어 냈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풀을 벤다. 그러다가 사람의 마음에 자라는 곱지 않은 마음들도 제때 뽑아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쁜 마음들을 제때 솎아내지 않으면 가시박 덩굴처럼 시간을 타고 더욱 무성해질 것이다. 복숭아나무를 휘감고 지붕까지 타고 올라간 가시박 덩굴처럼 나쁜 마음들도 어느 순간 내 안을 꽉 메울 것이다. 이렇게 무성해진 나쁜 마음들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제거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풀을 베어내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이다. 마음이 쓸리고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내 안에는 나쁜 마음, 미워하는 마음, 시기심, 질투심 같은 것들이 수시로 자라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라난다. 나는 인식하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불쑥 자라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나쁜 마음들을 보면서 섬뜩해 지기도 한다. 지금 내 안에 나쁜 마음들이 들어있지 않은지 살펴본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시 풀을 벤다. 가시박 덩굴 사이로 명아주가 보인다. 잘 다듬으면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굵고 단단하다. 명아주가 어느 새 이렇게 굵게 자랐던가. 예전엔 명아주만 보면 뽑아내기에 바빴다. 고추보다 더 크게 자란 명아주를 보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쇠비름도 악착같이 뽑아냈다. 빨랫줄에 걸어놔도 일주일은 버틴다는 질긴 생명력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그런 쇠비름을 약재로 사용하고 심지어 나물로 무쳐서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또 놀랐다. 그러고 보면 하찮게 보이는 풀들도 모두 쓸모가 있다.

쇠뜨기는 군락을 이루고 있고 질경이, 바랭이, 마디풀도 보인다. 저들에게도 내가 모르는 유익한 약효가 있을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풀 한포기도 생명의 가치를 지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사람의 나쁜 마음에 견주었으니 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낫질을 멈추고 잠시 쉬며 물을 마셨다. 평상에 앉아 풀을 바라본다. 나는 풀 만큼이나마 유용한 존재던가. 이런 생각을 했다.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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