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3)
  • 경남일보
  • 승인 2017.09.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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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3)

“나는 그 불안한 현장에서 벌벌 떨면서 다시 오줌을 싸고 설사를 하기도 했지. 한 때나마 자식으로 쓰다듬던 나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엄마는 나를 미국 가정으로 넘겨주었지. 그러나 거기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전에 없이 간 졸이는 공포심까지 생겼지. 귀신처럼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들여다보면서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들만 하는 거야. 내가 알아듣지 못하게 지절거리는 말은 물론이고 먹고 싶은 밥도 된장국도 주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만 먹으라고 주는 거야.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반면 마음 붙일 곳없이 허둥대며 자꾸 어둔해졌어. 처음에는 아주 친절하게 사랑해 주길래 이에 덩달아서 나도 아주 많이 웃고 활발하게 까불 때도 있었지. 그러다 문득, 순간 정지화면처럼 아주 차갑게 나를 응시하는 눈빛을 발견한 순간 섬뜩하게 오그라들 순간이 늘어갔다. 내가 잘못 본 것이라 여기고 아주 빤히 그들의 눈치를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의 눈길 역시 나를 주시하고 있었어. 그 후부터 나의 밝고 선명하던 내면은 사막위에 놓인 것처럼 삭막하고 딱딱하게 굳어지며 나를 위한 부드럽고 따뜻한 눈길을 갈망하기 시작했던 거야. 내가 서야할 곳, 나아가야할 방향을 감지하느라 상대방의 눈치를 더 기민하게 살핀 다음에야 바람에 흔들리는 풀처럼 뿌리는 가만히 두고 겉만 반응을 하면서. 가족이라고 나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눈치만 보는 내가 싫다며 차츰 서먹하고 멀게 되어버렸어. 나는 엄마를 부르면서 울었어.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떼를 썼지만 내 외로움과 무서움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어. 일년 쯤 있다 나는 그 집을 나왔어. 술주정뱅이가 되었지만 내게 다정했던 나를 키워 준 엄마를 찾으러 나섰던 거야. 술 취해 해롱거리면서도 나를 안고 울 때면 엄마의 품은 포근했거든. 그 너른 땅에서 일곱 살짜리 어린 아이가 어떻게 바늘 한 개 쯤의 존재를 찾아내겠어.“

귀남의 이야기는 얼굴만 보이면 실꾸리 풀리듯이 밤낮없이 풀려나왔다.

”그 동안 내가 어떤 고생을 하고 살았는지 너희들은 모르지? 부모 복 없다고 욕하는 호남이 저년은 내 앞에서 그런 소리 또 하모 아가리를 쫙 찢어놓을 거다. 부모가 감싸주는 그 훈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면서 씩뚝깍뚝 나오는 대로 씨부린다. 아이구 징해. 아이구 진저리쳐. 아아, 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이리 거꾸로 선다. 여기 이 상처 좀 봐라. 아프리카 동물 세계하고 인간 세상이 다른 줄 아나? 잡아먹고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새끼 누가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까무러친 적도 있다. 니들은 재미있게 부모 밑에서 안존하게 지낼 때 나는 그렇게 지옥 생활을 했단 말이다. 죽을 둥 살 둥 헤매면서도 내 머리 속에 각인돼 있는 희미한 그림 하나를 잊지 않기 위해 독기로 버틴거야.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이민을 가기 전에 어머니가 나를 업고 그랬던 것 같아. 불붙은 듯 황홀하던 하늘에 대한 기억. 자잘한 나무들이 늘어 선 오솔길을 업혀서 갔는데 저 아래로 조그맣게 집들이 보이고 냇물이 흐르는 것도 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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