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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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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9  23: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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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6)

“편견을 버리세요. 우리가 무어 그리 전통있는 가풍을 지켜야할 명문가라고, 또 그 장소에서 사람들은 구상한 사업 이야기도 나누고 인생 고민도 주고받는 거 아닙니꺼. 아부지도 한창 때 동동주집 드나들면서 사람도 사귀고 안 그랬어예?”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나! 너긋들이 안즉 사나들로 몰라서 그렇제, 술집 드나드는 놈들 내남없이 늑대로 안 변하는 줄 아나?”

자식을 위한답시고 저렇게 당당하구나. 차라리 돈 많이 벌어서 용돈이나 팍팍 많이 주라. 그럴 것이지. 표리부동한 아버지의 모습에 양지는 속으로 실소를 날렸지만 아버지를 달랬다.

“바쁜 호남이가 여기서 손님 시중들 것도 아니고 종업원하고 얼굴 마담도 따로 둘거라니까 아버지가 염려할 일도 없을 깁니더.”

아버지의 낡은 울타리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휘청거렸다. 더욱 깡말라진 심신을 바들거리며 밥 먹고 물마시듯 지시하고 간여를 했지만 채택될 리 없는 시대착오적인 것들을 모른다.

아버지가 아무리 반대를 해도 새롭고 멋진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역시나, 이런 세련된 곳이 있었냐고 개업 날부터 손님은 앉을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좋은 일만 있어서 안 되는 집이라는 암시처럼 그런 와중에 불쑥불쑥 귀남의 말썽까지 보태졌다. 이번에는 우람한 성벽처럼 양지네들이 의지하는 고종오빠의 정성들인 제의(祭儀)를 망쳐놓은 사건이 벌어졌다.

오빠는 그날이 되면 일체 다른 일을 보지 않고 정육점이나 사회적인 어떤 일도 접는다. 경건한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려는 엄숙함이다. 양지가 본 많은 사람 가운데 일삼아 동물의 영혼에게 자사를 지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날이 정해지면 오빠는 새벽이슬을 밟고 깨끗한 산에서 채취해 온 황토를 한 줌 씩 제단주변에다 경계가 되게 깔았다. 파란색 풀만 우묵해 보이는 주변과 판이해진 색조대비로 인해 빨간색 황토는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갖추어 준비한 제물을 상석에다 진설한 다음 왕골로 짠 민무늬 제석을 깔았다. 겨나 엔시레지 사료를 제상에 올리지 않을까 했던 애초의 추측은 벌써 해소된 뒤였기에 양지도 목부들도 말없이 행사를 거들었다.

오빠가 하는 손짓에 따라 여러 자루의 양초를 하나로 묶은 두 뭉치의 양초가 제상의 양쪽에 세워졌고 중국의 사찰에서 그러하듯 한 아람내기로 큰 향 묶음도 두 곳에 세워졌다.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초와 향에다 불을 붙인 오빠가 물러서자 한데 묶은 촛불은 여럿의 힘이 모인 횃불모양으로 큰불길이 일렁거렸고, 기세 좋게 피어오르는 향연은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마치 봉화를 피운 것처럼 뭉게뭉게 창공으로 휘날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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