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용’만 붙으면 비싸지는 '핑크 세금'
‘여성용’만 붙으면 비싸지는 '핑크 세금'
  • 경남일보
  • 승인 2017.09.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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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여자라서 손해보는 현실에 울분
차수정(29세) 씨는 다가오는 겨울에 입을 다운자켓(dawn jacket, 새의 부드러운 깃털을 넣은 방한용 겉옷)을 구매하려다가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 동일한 가격의 같은 제품인데, 남성용보다 여성용의 기능이 현저히 낮았던 것이다. 수정 씨는 “남성용보다 보온 기능이 절반 밖에 안되는데 가격은 동일했다”며 “여성이라서 우롱당하는 느낌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기능이 필요한 옷은 남성용을 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퍼졌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다운자켓의 우모량(제품에 들어간 우모의 중량)과 필파워(복원력)을 살펴보면 남성용은 우모량은 500g~650g, 필파워는 800~850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여성용 우모량은 241g~300g, 필파워는 600~700이거나 아예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도 했다. 심지어 같은 브랜드 같은 라인에 남성용 여성용이 두 배 이상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해당 아웃도어 업체들은 “우모량의 차이는 제품의 크기와 디자인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라며 “남녀차별의 문제가 아닌 디자인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여성용은 남성용보다 슬림한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동일한 양의 충전재를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업체의 입장 발표에도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성용 제품이 남성용보다 더 비싸거나 질이 낮은 ‘핑크 세금(Pink Tax)’가 이제 막 수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핑크 세금(Pink Tax)’이라는 이름은 기업들이 여성용 제품에 주로 분홍색을 사용한 것에 유래됐다. 제품의 색상이나 설명에 분홍색이 들어가기만 하면 가격이 비싸지거나 질이 떨어지는 성차별적인 쇼핑의 불평등을 상징한다.

지난해 미국 뉴욕 소비자 보호부는 기능이 같은 제품이라도 ‘여성용’은 ‘남성용’에 비해 평균 7%가량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8000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여성용이 비싼 제품은 42%에 달했다. 가장 가격 차가 많았던 제품은 미용용품으로 여성용이 평균 13% 비쌌다.

일부 여성들은 남성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속옷이었다. 지난 7월부터 SNS를 중심으로 남성 팬티 선호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 팬티의 불편함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계정까지 생겼다. 이들이 남성 팬티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성 팬티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 팬티는 레이스와 리본, 꽃무늬 등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 때문에 비싸기만 하고 질이 떨어지며, 여성의 몸을 고려하지 않은 재봉선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고은선(35세)씨는 핑크 세금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곳으로 미용실을 꼽았다. 은선 씨는 “대다수의 미용실은 남성 커트 비용과 여성 커트 비용이 다르다”며 “가격이 다른 이유를 물어보면 ‘남성들이 머리가 더 짧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머리가 짧은 여성은 남성 커트 비용으로 머리를 자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미용실은 남성과 여성의 커트 비용 차이를 5,000~10,000원 선으로 다르게 책정해 놓고 있었다.

‘핑크 세금’에 대해 업체들은 “여성용 제품에 특별한 향과 소재가 사용되고, 광고비나 판촉비 투자가 커지면서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용 제품만큼 남성용 제품도 다양해지고 프리미엄이 붙고, 유명 스타를 광고에 등장시키는 등 마케팅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임금이 낮다. 이런 상황에서 ‘핑크 세금’은 성별 간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오진선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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