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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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7.09.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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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박경리 동상, 그리고 북유럽 이야기(14)
 


입센의 단골 카페인 ‘그랜드 카페’에 들어가 카페라떼를 천천히 음미하며 ‘인형의 집’을 재구성하고 있는 중인데 창쪽에 위치해 있는 ‘입센의 자리’를 찾아 앉는 여자가 있었다. 이 자리는 이미 말한 대로 입센이 생존시 오후 1시에 와 앉았던 자리여서 1시에서 2시까지는 그 자리를 비워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앉아서 차를 마시는 중에 2시가 되었는지 미지의 여자 손님이 그 자리를 앉아버렸다.

그녀에게 필자가 말을 걸었다. “그 자리의 의미를 아느냐?”고 했더니 “네, 입센의 자리이죠. 나는 로마에서 왔는데 입센이 로마에서 30여년 살아 이탈리아 연극사에서 의미 있는 분입니다”고 말하며 다소곳이 미소를 띄었다. 그녀의 그 미소는 ‘노라’의 미소로 여겨져 자리가 한결 훈훈해졌다. 입센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에서도 인기 작가로 알려져 있고, 그런 까닭에 입센의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무대에 많이 올려진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인형의 집’ 이후 노르웨이에서 특히 진보 보수의 양자 대립이 심해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듯하면서도 기울어지지 않고 간단없이 언론에서는 그 찬반에 대해 크게 다루고 있었다. 입센은 그로부터 2, 3년후 대답으로 속편 ‘유령’을 내놓았다. 아르빙 부인은 남편이 죽자 미망인으로서 개가하지 않고 남편이 살아서 이룬 명망의 자산으로 외아들 오스월드에게 모두를 걸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오스월드가 선천성 성병에 걸려 미쳐가게 된다. 이 병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다른 여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된 아르빙부인은 남편에 대한 극도의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는 줄거리이다.

이 희곡 작품은 아르빙 부인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 옳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 언론에서는 보수쪽에서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남편의 이미지를 의지하며 어렵게 가정을 지켜 보았자 돌아오는 것은 좌절이고 실망만 안겨줄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아직 일행의 자유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좀 더 이 분위기를 누리고 싶어졌다. 그 사이 입센의 자리에 있던 그 여자가 나가고 다시 그 자리를 한 남자가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인상이 입센의 작품 ‘페르귄트’의 주인공 페르귄트를 닮은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카운터 아가씨와 대화하는 것으로 보아 노르웨이의 어디 지방에서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농군처럼 작업복 스타일이었고 챙이 축 쳐지는 모자를 쓰고 있어서 릴르함메르 계곡이나 오따 농장 지대에서 도시의 바람을 씌우러 나오지 않았나, 여겨졌다. 필자의 고향 산청에도 아무리 골짜기나 궁벽진 독가촌 같은 데서도 백구두 신고 라이방끼고 바지 주름 잡은 멋쟁이 남자가 시골 장터 같은 데로 부릉 부릉 멋내며 배회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데 그 남자가 그 싸이카 남자로 보였다.

일행의 집합 시간이 다가와 필자는 아쉽게 입센의 그랜드 카페를 작별해야 했다. 다시 오슬로 시청으로 되짚어 가면서 오른 켠에 서 있는 오슬로 국립극장을 찬찬이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살아생전에 입센과 라이벌 작가였던 비에른손 동상을 눈 안에 넣고 그가 작사한 노르웨이 국가(國歌)를 떠올린다. “그래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 앞으로 떠오르는 이곳을/바위 투성이에 바다의 풍랑을 맞아도/ 수많은 사람들의 집이 되는 이곳을/ 사랑한다 사랑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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