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9)
  • 경남일보
  • 승인 2017.09.1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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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9)

오빠는 축우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정립한 자신만의 비법으로 사료를 만드는데 이제는 양지가 어지간히 마음을 붙인 것 같으니 그 제조과정을 전수해 줄 것이라 했다.

“자네는 우리 집 소들이 여타의 질병은 물론 감기한 번도 안 걸리고 튼튼한 것이 참 신기하다고 했지? 축우 경비를 절약하는 경제적인 이익도 있지만 질병의 예방도 잘되거든. 요즘 부르셀라니 뭐니 여러 집 작살이 났지만 우리 집 소는 항생제 같은 건 일 그람 안 써도 기침 한 번도 안하잖어. 소독약도 안 쓰는데 축사에서 냄새도 안 나는 것 봐. 저기 제 발 밑의 분비물이 발효된 퇴비를 소들이 파 묵는 거, 미생물끼리 자연발효 됐기에 가능한 거라.”

“오빠가 꼭 황토 우린 지장수를 먹이는 것도 극진한 애정이 없으면 안 되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십더.”

“그래 신토불이란 말을 자주 쓰는데 그게 폐쇄된 생각이 아니고 가장 한국적인 풍토에 걸맞는 생육방법이 세계적인 것이란 내 말에 공감하는 축산학자들도 더러 있어. 우선 이익에 치중을 하면 갈팡질팡 하는데 우리들 농부나 목부들도 자기 철학을 갖고 있어야 돼. 가설은 아무리 찬란해도 쭉정이지만 자연 진리는 영원하다는 게 내 철학이거든. 그래서 비싼 쇠고기를 먹는 사람이 얻어가는 게 있게 한다. 그것도 쇠고기 장사하는 내가 차리는 예의가 될 것이고.”

그날은 그런 지론을 피력했던 오빠가 지신만의 비법을 전수하러 오는 날이었다.

소죽을 끓이고 난 양지는 아궁이 앞에 있는 땔나무들을 나뭇간 쪽으로 밀어놓고 비질을 했다. 언제부턴가 모르게 코를 적시는 구수한 냄새가 짐승의 먹이 같지 않게 허기를 자극한다. 비록 짐승이 먹을 것이지만 재료는 물론 그에 못지않는 정성도 들였고 쏟는 노력에 따라 친근해진 증거일 것이라 양지도 이 기분이 좋았다. 김이 푸푸 나오는 뜨거운 솥뚜껑을 열기 위해 면장갑을 속에다 끼고 고무장갑을 덧끼면서 양지는 손등으로 이마 위의 머리카락을 걷어 올렸다. 방조림이나 방풍림처럼 든든하게 외가댁 사람들을 돌봐주는 오빠가 너무 고마워서 양지는 최대한의 정성으로 소를 돌보고 오빠가 만들어 놓은 비법대로 쇠죽을 끓인다. 잔약한 체격인 그녀가 감당하기 무리한 노동일도 열중해서 하는 동안 어느새 후딱 하루가 가고 무거운 채무감도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 오빠를 돕는 것보다 사실은 자신에게 덕이 되는 점이 더 많다. 오빠에게 의탁해서 단순히 의식주의 도움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안으로 양지는 피폐했던 자신의 영이 나날이 회복되고 있음도 느꼈다.

저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서 메모할 노트를 찾아들고 있는데 언덕길을 올라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났다. 오빠일 것이다. 오늘은 덤으로 종묘우 겸 씨름소인 ‘장군이’에게 먹이는 특수사료 조제용법도 보여주리라 했던 날이라 기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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