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여성에 대한 폭력, 패러다임의 변화 필요
김향숙(객원논설위원·인제대학교 응용수학과 교수)
[경일시론] 여성에 대한 폭력, 패러다임의 변화 필요
김향숙(객원논설위원·인제대학교 응용수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9.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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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은 심각한 인권침해다. 국제연합(UN)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하 VAW로 표현)을 ‘성별(gender)에 기인한 폭력으로,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정신적 피해나 고통을 끼치거나 또는 그럴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이라고 정의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여성의 35%가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과 여러 형태의 성폭력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피해 가족과 공동체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음에도 세계적으로 팽배해 있는 VAW 문제를 체계적으로 근절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직도 조롱, 무관심, 피해자에 대한 비난 등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범사회적 차원에서 VAW를 다루고 해결하기 위해 접근 방식 자체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첫째, VAW 관련 용어 수정이 요구된다. ‘여성 폭력’, ‘여성 문제’ 또는 ‘여성 이슈’라는 표현은 VAW가 마치 여성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하여,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가해자의 역할 및 문제 해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하여왔다. 따라서 잘못 사용된 용어 수정은 VAW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가해자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낳는다.

둘째, VAW를 범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야한다. 남성이 VAW를 남성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 방어적인, 심지어는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VAW를 반대하는 남성에게 혐남, 페미나치라는 저속한 낙인을 찍는 사회 반응은 지금까지 VAW가 간과되고 죄가 아니라는 사회적 풍토를 만드는데 악영향을 미쳤다. VAW는 한 성별에 대해 이루어지는 폭력 행위이므로 이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남성 여성을 불문하고 이것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만 한다.

셋째, VAW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제도, 문화 및 표준을 바꾸어야 한다. VAW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부산물이다. 그것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성의 불평등과 차별이다. 이러한 불평등과 차별을 조장하는 환경은 법, 정책 및 관습 등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따라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경제 활동 기회부터 제한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사회적 권리를 행하고 통제할 여건이 마련된다면 VAW가 정당화되는 불합리한 환경은 바뀔 것이다. 여성 사회참여도와 여성평등 인지도가 높고 여성과 남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력의 분포가 균등한 사회일수록 VAW가 적게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 구조적 문제가 VAW의 중요한 원인임을 말해준다.

넷째, 예방 매커니즘 마련이 절실하다. ‘여자 때리는 남자를 처벌하면 된다’는 단순한 처방은 질병을 다루지는 못하고 증상만 치료할 뿐이다. 피해자에 대한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지원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여성들이 폭력, 차별, 보복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소통할 수 있는 안전한 제도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VAW는 여전히 숨겨진 사회의 암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결국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적들의 말이 아닌 친구의 침묵이다”라고 하였다. VAW가 여성만의 문제, 개인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절대 해결될 수 없다. VAW가 가해자의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이고, 폭력의 문화, 성의 구조적 불평등, 그리고 인권의 문제임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다 같이 힘을 합쳐 사회의 제도, 문화와 표준의 변화를 차근히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
 
김향숙(객원논설위원·인제대학교 응용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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