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대한민국] 전쟁 속에 피었던 문화
[증언:대한민국] 전쟁 속에 피었던 문화
  • 경남일보
  • 승인 2017.09.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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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영(언론인,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
UP.AFP 제2회 예술제 來晉 취재
장일영(언론인,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

 
10월27일자 2면에는 ‘세기의 대호화판, 영남예술제전 개막준비진척, 각부 참가 물경 천오백명 돌파’라는예고기사가 실렸다.


올해도 ‘영남 제일 형승(形勝)’으로 일컬어지는 진주의 자연 경관과 어우러지며 빚어낼 제67회 개천예술제가 겨레의 명절 추석과 더불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예술은 ‘각고의 시간과 집중력, 끝없이 반복되는 도전과 좌절, 광대무변한 상상력과 깨달음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고단했던 옛 시절에는 글이나 그림, 춤이나 노래를 한다면 춥고 배고프다고 말렸다. 그런 시절, 그것도 전쟁 중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예술의 꽃’의 제전을 펼쳤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1949년 정부 수립 돌맞이 잔치로 열었던 예술제는 6.25전쟁으로 한해 거른 뒤 1951년을 맞았다. 그러나 1.4후퇴로 정부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고, 수만 장정을 얼어 죽고 굶어 죽게 만든 국민방위군 사건, 산청 함양과 거창양민학살 사건 등 참으로 어둡게 시작한 그해는 단 하루도 총성이 멎는 날이 없었다.

이렇듯 암울한 기운이 뒤덮인 가운데 경남일보는 10월 27일자로 ‘세기의 대호화판, 영남예술제전 개막 준비 진척, 각부 참가 물경 천오백 명 돌파’라는 예고에 이어 ‘봉화 헌정으로 서제 엄숙 거행, 다채로운 절차 오후부터 개시’(11월 2일자)라며 예술제 개막을 알렸다.

호국 충혼이 서린 창렬사에서 1일 열린 서제는 봉화 헌정, 평화비구(飛鳩), 국민의례, 독립의 노래 합창, 개식사, 분향헌작, 제문봉독, 참가자 대표 선서에 이어 양성봉 도지사를 비롯해 미공보원장, 서남지구 전투사령관, 문총 위원장, 진주·부산·마산시장 등 열두 분의 축사가 있은 다음 축전 낭독, 문총 본부 진주지부 표창, 만세삼창 순으로 길게 진행되었는데 00비행단의 축하비행으로 제전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예술제 개막을 알리는 기사가 실린 11월2일자 2면


특히 이날 봉독된 설창수 대회위원장 특유의 긴 제문 속에는 전쟁 중 제전을 결행하는 비장함이 담겨 있다. “…싸우는 백성들이 함부로 노래하고 춤추어 유흥함이 아니라 오히려 싸우는 마음의 꽃다발과 봉화로써 단군님의 제단 앞에 후손의 득죄를 드리는 것”이라며 “전 세계에 보내는 문화민족 대한 백성의 폐허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의 합창으로…우리 소리와 몸짓이 세계의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인 오상순이 “우린 백골을 안고 춤춘다.”고 했던 말도 제문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11월 4일자 2면에는 세계적인 통신사인 ‘UP’와 ‘AFP’ 특파원이 예술제를 취재하기 위해 진주에 왔다는 소식이 실려있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적인 통신사 UP와 AFP특파원이 예술제 취재차 2일 진주에 온 것이다.(11월 4일자) UP는 UPI의 전신으로 AP와 함께 미국의 2대 통신사이며, AFP는 프랑스 유일의 세계적 통신사이다. 매일 밤 영화 상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USIS(미국공보원) 영화 촬영반과 내외 기자들의 열띤 취재 속에 세계적 통신사 기자들의 합류로 제전의 열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특히 미공보원은 6일 동안 예술제 전모를 촬영하는 등 그야말로 ‘폐허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의 합창이 세계의 거울에 비춰지게 된 것’이다.

한편 서제가 끝난 자리에서는 곧바로 도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촉석루재건 기성총회(11월 2일자)를 열고 임원을 뽑았다. 임원은 △총재 국무총리 △부총재 문교부장관 △명예회장 도지사 △회장 진주시장 △부회장 문해술 등 3명 △이사 설창수 박세제 문우상 등 20명 △감사 정명수 등 3명으로 ‘강력한 진용’으로 촉석루 재건 결의를 다져 제전의 의미를 한층 깊게 했다.



예술제는 연일 ‘인산인해 성황’ 속에 불탄 촉석루를 대신한 비봉루에서 가진 시상식을 끝으로 ‘한국 문화사상 신기록을 수립’하며 5일간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예술제 전반에 대한 평가와 다음 제전을 위한 ‘문화인 좌담회’(11월 8일자)가 열리고 좌담내용은 경남일보에 3일간 연재되었는데, 좌장 오상순, 사회 유치환으로 이뤄진 참여인물 면면들이 눈길을 끈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문화의 중심이 서울도 아니요 부산도 아니요…진주로 옮겨지고 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옮겨 보면 △문학부 오상순 구 상 김달진 김윤성 유치환 김수돈 김상옥 김춘수 이경순 박영환 조연현 박용구 김소운 설창수 김보성 김동렬 장 람 최계락 조진대 이형기 서병일 △언론(변론)부 김철수 최동수 박세제 김대규 박두삼 김욱주 정성오 김창국 △음악부 이승학 이용준 이상근 장규상 성경린 국립국악원 악사 일동 △미술부 우신출 홍영표 박생광 조영제 성풍곡 △무용부 옥파일 하 옥 △고전음악부 모추월 예 란 등인데 전란 중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만 한 당대 유명 문화인들이었다.

또한 매일 연극 공연 전에 이뤄진 시낭송에는 1일 오상순 구 상 김춘수 최현옥, 2일 김달진 박목월 이형기 장 람, 3일 유치진 조지훈 이영도 이경순, 4일 박두진 김윤성 박영환 김동렬, 5일 홍두표 김상옥 최계락 설창수였으며, 시화전에는 낭송시인 외에 서정주 이정호 손동인 등의 이름이 더 보인다.



 

‘문화인좌담회’의 소식이 실린 11월 8일자 2면


이렇듯, 38선은 말할 것도 없고 지리산 등지에서 울리는 총성에 띄워 보낸 개천 예술의 꽃씨는 바다 건너 제주예술제로, 뭍으로 백제문화제로, 신라문화제 등으로 꽃을 피웠다. 1956년 움튼 제주 예술제는 3회까지 하다가 쉰 다음 1962년 제주문화제, 한라문화제로 불리다가 탐라문화제로, 1955년 부여에서 백제 3충제(성충 흥수 계백)와 궁녀제, 뒤이은 공주의 대왕제에 문화행사가 곁들여진 백제문화제는 공주와 번갈아 열리다가 통합 개최로 오늘에 이르고, 신라문화제는 1962년에 비롯되었다. 여기서 예를 든 세 곳은 ‘문화제’를 쓰는데 반해 순수 ‘예술제’는 진주뿐이란 점이다. 그러면서 진주남강유등축제를 특화 독립시킨 것이다.

장일영 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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