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인가 ‘믹걸리’인가
고영회(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막걸리’인가 ‘믹걸리’인가
고영회(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9.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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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어릴 때 아버지가 술 심부름을 시키면 아랫동네 가게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왔다.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슬쩍 마시던 기억이 있다. 잔치를 앞두고는 고두밥에 빻은 누룩 가루를 넣은 독을 방 구들목 따뜻한 곳에 두고 이불로 감싸 발효시켰다. 그리고 익은 술은 뒷마당에 땅을 파고 묻고 그 위에 나뭇짐을 쌓아 숨겼는데, 어느 날 ‘술 치러’ 나온 사람은 귀신같이 찾아내 벌금을 물렸다. 그때 막걸리와 지금 보는 막걸리는 같을까?

2000년대 중반에 막걸리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막걸리의 가치를 알아서 찾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일본 관광객이 막걸리를 찾으니 우리나라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셈이다. 물론 일본 관광객이 막걸리를 찾게 만든 숨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어로 ‘막걸리 기행’ 책을 낸 정은숙 작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뒤이어 한글판이 나왔다. 나도 그 책에 나온 막걸리지도를 보고 찾아다녔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막걸리를 보자. 우리 막걸리는 고두밥(지에밥)에 누룩을 넣고 물을 섞어 발효시킨다. 누룩은 발효균을 모으는 매개체다. 누룩의 맛과 향 덕에 빚는 집에 따라 독특한 맛이 난다.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아 맛도 깔끔하다. 그런데 요즘 시중에 나오는 막걸리는 누룩을 쓴 것을 찾기 어렵다. 누룩 대신에 곰팡이를 배양하여 쓴다. 이를 입국(粒麴)방식이라 한다. 이 방식은 짧은 시간에 많이 발효시키고 품질도 비교적 균일하게 맞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신 전통 막걸리는 설 땅을 점차 잃었다.

입국을 일본에서 수입해 쓰는데, 해마다 천억 원 넘게 수입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수입한 입국을 수입쌀에 섞어 발효시켜 거기에 아스파탐과 같은 감미료를 넣고 심지어 인공 탄산을 넣어 나온 것이 시중 막걸리다. 이것은 사전에 나오는 막걸리 설명과 다르다. 막걸리에서 한끝 모자라니 ‘믹걸리’로 불러야 헷갈리지 않겠다.

며칠 전 나막사(나라사랑 막걸리사랑) 모임에서 김현풍 총재는 ‘막걸리가 우리나라 술이라면서 우리 잔치에 막걸리가 없다’고 한탄스럽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모이는 혼례잔치, 장례식장에 막걸리가 없다. 음식점에서 소주나 맥주는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지만, 막걸리는 대부분 가게에서 한 가지만 갖추고 있다. 이상하다.

진주에 나오는 것은 ‘막걸리’일까 ‘믹걸리’일까? 이번 한가위에는 우리 쌀로 만든 맛이 넉넉한 고향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고영회(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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