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3)
  • 경남일보
  • 승인 2017.09.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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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3)

낯선 어르신께 이런 얘기를, 어르신도 소싸움 구경을 해봐서 잘 아실텐데 저도 많이 흥분했나 봅니다. 어르신도 저 밖에 있는 식당에서 소머리국밥을 드셨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엔 저도 태연하게 그랬지요. 그런데 이런 소싸움 구경을 자주하는 가운데 수업시간에 배운 고창증이나 수송열이란 소의 질병을 알고서부터 생각이 점점 바뀌게 된겁니다. 수송열은 소를 수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에 의한 병인데 폐쇄된 공간에 갇힌채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계속되면 면역력이 낮아져 폐렴과 패혈증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수송열은 사람의 목적을 위해서, 태어난 곳에서 느리게 살든 짐승에게 사람이 만들어준 질병인거죠. 생래적인 환경과 어긋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얼마나 많은 소들이 죽어갔으면 수의대 교과서에까지 병명이 등재되게 되었을지 답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또 하나 좀 전에 말씀드렸던 고창중은 소의 대표적인 질병으로 수의사 국가고시에도 단골로 등장합니다. 육질이나 식감이 좋은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풀이 아닌 농후 사료, 즉 옥수수, 콩 등의 곡류를 주원료로 한 사료를 먹이면 위의 산도가 증가해 소의 밥통 네 개 중 1, 2의 위에 가스가 찹니다. 생래적인 소의 병이 아니라 이것도 사람으로부터 선사받은 질병이랄 수 있죠.

사람들은 소를 도축해서 먹는데 그까짓 싸움 좀 시켜놓고 구경하자는데 무슨 딴지를 거느냐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잡아먹기까지 하는 동물에게 억지 싸움까지 시켜야만 됩니까? 스페인의 투우도 그런 반성의 목소리로 존폐의 논의가 진행된다잖아요. 어르신 눈에도 물론 제가 너무 비판적이고 나약한 인간으로 보일테죠. 하지만 제 신념은 할 소리는 해야 된다입니다. 사람이 많이 배우고 연구해서 하려는 성취목표는 과연 무엇일 것 같습니까? 이건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인간이 부리는 만용과 횡포입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몰고 온 장군이를 소개하면서 오빠는 그랬다.

“나는 자석에 끌린 듯이 와락 그 청년을 끌어안고 말았지.”

이런 싸움소의 전력을 알게 된 귀남의 구박을 오빠는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말로 양지의 무안을 꺼주었다.

“얌마 그래도 네 입장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야. 알았지?”

격려로 장군이의 등을 다시 한 번 더 툭툭 쳐 준 오빠가 죄인처럼 움츠리고 서 있는 양지를 보고 밝은 목소리를 지어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오빠, 에나 참말로 면목이 없어 죽겠심더.”

“좀 의외이긴 하지만 이만한 과녁판이면 한 번 장난쳐 보고 싶지 않겠어? 또 그러기야 할라꼬. 너무 그러지 마. 이놈도 뭐 벌써 이자삔 것 같은 같은데.”

농담 섞인 오빠의 대꾸에 양지는 조금 마음이 풀렸다. 장군이도 조금 전 자신이 당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린 듯 늠름하게 버티고 선 자세로 되새김질만 하고 있다. 모두들 태연한데 양지 자신만 좁은 소갈머리 때문에 혼자 답답하고 혼자 분노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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