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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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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9  23: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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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5)

아득히 먼 땅, 불타는 저녁놀 속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그리면서 어린 것이 얼마나 아린 심정으로 새겨 넣었을 노랫말이런가.

하지만 너무나 돌출적이고 악의적인 그녀의 행동을 끝없이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람은 없다. 남이라면 또 모른다. 그녀의 맺힌 한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품어주어야 한다고 교과서처럼 말할 것이다.

그러나 피붙이에 대한 애착과 고통이 있으므로 남들처럼 마냥 봐 넘겨지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양지와 호남이 모두 이제는 암의 종기처럼 그녀를 의식하고 있다. 남인 듯 바라보면 풀밭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귀남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다. 더구나 야릇한 퇴폐와 고혹적인 매력이 뒤섞여 있어 호남의 가게에 온 남자들이 흘깃거리며 정체를 캐묻곤 해서 호남이 몹시 곤란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야윈 몸에 홑이불을 감싸듯이 긴 치마를 늘어뜨린 모양을 일하기 불편한 모양새라 지청구나 했을 뿐 그녀의 개성을 인정해 준 적도 없었다. 남이 어떻게 귀남의 저 처연한 매력 속에 숨겨져 있는 혈연을 찌르기 위한 칼날을 알 수 있을까.

“꼴 보기가 참 싫지?”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던 귀남이 먼저 말을 건넸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싶게 멀쩡한 낯빛이다. 막상 상대가 그렇게 나오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진 양지는 그냥 옆에 있는 나무의 여린 이파리 하나를 따서 부채질하는 시늉을 낸다. 이윽한 눈길로 저 먼 곳을 바라보면서 귀남이 덧붙였다.

“나도 내가 와 이리 못돼졌는지 모르겠다. 본마음은 안 그런데 자꾸 엇질로 나가야 직성이 풀리니…….”

너무도 천연스러운 귀남의 태도에 양지는 다시 안타까워지면서 왈칵 짜증이 나 쏘아붙였다.

“아유 지겨워, 또 그 소리. 전에도 몇 번이나 그랬잖아. 호남이랑 싸우고도 그랬고, 아버지한테 대들고도 그랬고, 또 오늘은 장군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참말로 잊어뿐기가?”

양지가 호된 질책을 하는 순간 자극받은 감정을 싣고 날카롭게 뻗어오던 귀남의 눈길이 뚝 부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참고 또 참아야 된다고 자신을 다스리는 모양이 앙다문 입모양으로 드러났다. 양지는 또 무슨 꼬투리를 잡고 행패라도 부릴라 속으로 찔끔한 채 가만히 긴장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꺾은 고개를 들지 않고 한참이나 무연히 앉아있던 귀남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거야, 나도 그래. 나도 내가 무섭다고. 내가 왜 이래야 되는지, 모두들 싫어할 줄 알면서, 나도 모르겠어.”

떼쓰는 아이처럼 작은 주먹으로 앉아 있는 바위 턱을 때리자 타닥타닥 주먹이 튀어 올라 피부가 빨갛게 변했지만 귀남은 멈추지 않았다. 흑구슬처럼 동그란 예쁜 눈에서 눈물이 솟구쳐 올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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