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5)
아득히 먼 땅, 불타는 저녁놀 속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그리면서 어린 것이 얼마나 아린 심정으로 새겨 넣었을 노랫말이런가.
하지만 너무나 돌출적이고 악의적인 그녀의 행동을 끝없이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람은 없다. 남이라면 또 모른다. 그녀의 맺힌 한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품어주어야 한다고 교과서처럼 말할 것이다.
그러나 피붙이에 대한 애착과 고통이 있으므로 남들처럼 마냥 봐 넘겨지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양지와 호남이 모두 이제는 암의 종기처럼 그녀를 의식하고 있다. 남인 듯 바라보면 풀밭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귀남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다. 더구나 야릇한 퇴폐와 고혹적인 매력이 뒤섞여 있어 호남의 가게에 온 남자들이 흘깃거리며 정체를 캐묻곤 해서 호남이 몹시 곤란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야윈 몸에 홑이불을 감싸듯이 긴 치마를 늘어뜨린 모양을 일하기 불편한 모양새라 지청구나 했을 뿐 그녀의 개성을 인정해 준 적도 없었다. 남이 어떻게 귀남의 저 처연한 매력 속에 숨겨져 있는 혈연을 찌르기 위한 칼날을 알 수 있을까.
“꼴 보기가 참 싫지?”
“나도 내가 와 이리 못돼졌는지 모르겠다. 본마음은 안 그런데 자꾸 엇질로 나가야 직성이 풀리니…….”
너무도 천연스러운 귀남의 태도에 양지는 다시 안타까워지면서 왈칵 짜증이 나 쏘아붙였다.
“아유 지겨워, 또 그 소리. 전에도 몇 번이나 그랬잖아. 호남이랑 싸우고도 그랬고, 아버지한테 대들고도 그랬고, 또 오늘은 장군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참말로 잊어뿐기가?”
양지가 호된 질책을 하는 순간 자극받은 감정을 싣고 날카롭게 뻗어오던 귀남의 눈길이 뚝 부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참고 또 참아야 된다고 자신을 다스리는 모양이 앙다문 입모양으로 드러났다. 양지는 또 무슨 꼬투리를 잡고 행패라도 부릴라 속으로 찔끔한 채 가만히 긴장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꺾은 고개를 들지 않고 한참이나 무연히 앉아있던 귀남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거야, 나도 그래. 나도 내가 무섭다고. 내가 왜 이래야 되는지, 모두들 싫어할 줄 알면서, 나도 모르겠어.”
떼쓰는 아이처럼 작은 주먹으로 앉아 있는 바위 턱을 때리자 타닥타닥 주먹이 튀어 올라 피부가 빨갛게 변했지만 귀남은 멈추지 않았다. 흑구슬처럼 동그란 예쁜 눈에서 눈물이 솟구쳐 올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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