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7)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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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97)

파제 음식을 들고 와서 잡식성의 소들에게 나누어주던 늙은 목부의 말에 토를 달지는 않았지만 소를 둘러보는 모두의 눈길에는 한 마음의 흐름이 읽혀졌다. 외양간을 단속하던 오빠가 걱정되는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동생은 어서 귀남이 동생이나 찾아봐. 약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도 신경 써서 지켜보고.”

오빠의 배려에 할 말을 잃은 양지는 차라리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주위를 휘둘러보는 딴청으로 형제의 잘못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했다.

“그럴께요 오빠. 이제 죄송하다는 말도 염치가 없어 못하겠어요.”

서둘러 말한 양지는 또 어디선가 울고 있을지 모르는 귀남을 찾아 빠른 걸음을 옮겼다.



며칠 만에 호남이 직접 차를 몰고 왔다.

“언니야, 참말로 오늘은 내 땅에 같이 한 번 가보자.”

내 땅. 호남이 강조하는 의미의 실린 자긍심을 양지는 알고 있다. 귀남언니와 동행하자 권했다가 파토 났던 걸음이라 양지는 조심스럽게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기쁘고 뿌듯할 것인가. 본인이 아니라도 그 일을 알고 난 뒤의 심정은 양지 역시 가득 찬 곳간의 주인처럼 덩달아서 넉넉하고 든든했다. 양지는 호남이 끄는 대로 차에 올랐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기에 전처럼 귀남 언니와 같이 가자는 말은 하지 않고 호남의 뜻에 선선히 따랐다.

겨울이면 모랫바람이 안개처럼 드날리던 강변 모래벌판에 바로 그 신도시 구역의 선이 그어졌다. 호남이 땅 부자가 된 것을 안 뒤부터 양지는 세 살짜리가 식칼을 든 것처럼, 공연히 조마조마해졌다. 세 살짜리는 칼을 다룰 줄 모른다. 자칫하면 자기를 벨 위험이 있는 것도 미처 모른다. 곁에는 보호자로 언니가 있지만 세 살짜리는 신나게 그 칼을 휘두르는 재미를 즐길 것이다. 그 용도나 존재가치에 대한 어떤 자문도 충고도 성가시기만 할 것이다.

반면 이쪽에서도 신중함 없이 급한 행동을 자극하는 어떤 언행도 삼가야한다. 솔직히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말도 실감했다. 호남은 그럭저럭 저 먹고 살 길을 열었으나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은 양지 자신인데 아무리 먹고 쓰는 일을 절약해도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저축은 굼벵이 걸음인 거였다.

사람의 복은 각자의 그릇에 따라 노랑 빨강 검정처럼 서로 나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동생 호남이보다 통 털어 자신이 낫다는 자부심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그릇은 단순하고 작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매진했던 돈 그릇도 호남의 것에 비교도 안 되게 작다. 덜렁덜렁한 사고뭉치라 비난 받으면서도 들쑥날쑥 넓게 그려진 땅따먹기 지도처럼 호남의 그릇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늘 푼수가 있음이다. 화복도 그릇대로 주어지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증거 아닌가. 양지는 어떻게 하면 단순한 호남의 빈틈을 공략하여 제 그릇을 채울 수 있을까 골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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