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신방
셋방이라도 좋았다
국화문 벽지를 바른 단칸방
겨울에도 아내의 향기는
포근하고 따스한 봄날이었다
공영해(시조시인)
신방!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혼인을 치른 신랑·신부가 거처하도록 새로 꾸민 방으로 화조도(꽃과 새)나 화접도(꽃과 나비)가 그려진 병풍이 펼쳐져, 촛불이 비치는 동방화촉(洞房華燭)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마는 셋방이라니, 한 지붕 세 가족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에 눈 뜨면 아내의 얼굴과 함께 국화 벽지 가득했던 기억의 방. 매달 전기세 고지서와 수도 계량기 눈금을 헤아리며 세금을 각출하느라 머리를 맞대던 아내가 눈망울이 새까만 아이들도 낳고 이런 시도 쓰게 한 따스한 방. ‘이십 년을 써 오는 아내의 가계부/ 집을 낳고 차를 낳고/ 티브이, 세탁기, 냉장고 등을 낳았다「아내의 꿈」’. 가을 들녘에 지천인 국화 벽지를 함께 바라보며 아내의 손을 슬며시 잡아주면 어떨까./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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