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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13일 장면 내각의 2차 조각
김지원 기자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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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6  15: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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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3일자 1면에는 장면 내각의 2차 조각기사가 머릿기사로 실렸다. 그해 대한민국은 3·15 부정선거에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발생한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 국회는 민주당 주도로 6월15일 내각제 개헌을 통과시키며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됐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허정 국무총리가 내각수반을 맡아 그해 8월 대선이 실시했고, 민주당 윤보선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보선 대통령은 민주당 구파의 김도연을 국무총리를 지명했으나 하루만에 부결되고 신파인 장면을 국무총리로 지명해 1960년 8월19일 인준됐다. 
정권을 잡았지만 민주당 신·구파 간의 갈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첫번째 조각은 구파 인사들의 불만으로 한달도 안돼 2차 조각으로 이어졌다. 9월12일에 실시된 2차 조각에서는 5명의 구파인사가 대거 장관으로 인선됐다. 

다음해인 1961년 3월에는 윤보선 대통령이 장면 총리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등 신구파간 갈등은 제2공화국 내내 집권당의 약점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같은해 5월16일, 군사 쿠데타로 역사의 물줄기는 거대한 굽이를 쳤다. 
제2공화국의 의원내각제는 대한민국 사상 유일한 내각제 기반 헌정체제였다. 정무적 실권을 국무총리에게 두고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제를 채택하고, 대통령은 형식적 국가원수직을 수행하는 형태였다. 단 336일간 존재했던 제2공화국의 정치적 실험이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끝없는 권력욕의 저항으로 탄생한 의원내각제였다. 
파란만장했던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을 지나, 대한민국은 또다른 개헌논의에 들어간다. 1987년 제6공화국의 9차 개헌 이래로 30년이 흘렀다. 시대와 사람들의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미 곳곳에서 무르익었다. 
다만 10차 개헌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개헌이 아닌 주권자들의 요구가 이끌어내는 개헌이 되어야 성공한다. 온오프라인으로 부쩍 늘어난 매체가 시시각각 저마다의 시각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의 눈 또한 많고도 매섭다. 얼렁뚱땅 위정자의 입맛대로 굴리던 시절은 애저녁에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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