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J가 전학 간 날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 J가 전학 간 날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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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니 책상 하나가 비었다.

긴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등교하는 즉시 교사용 책상 앞에 서서 컴퓨터 자판을 제 맘대로 꾹꾹 누르며 ‘깔깔깔’ 밝게 웃던 천진한 얼굴의 J가 전학을 갔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새롭다고 하루 종일 무얼 해도 시무룩하고 신명이 나지 않는다.

지금쯤이면 칠판 앞에 나와 낙서를 할 시각인데, 그걸 기회로 수업시간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고 잔뜩 긴장된 분위기는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피시식’ 풀어지면서 종알종알 수다를 시작할 시각, 오늘은 아무도 웃겨주지 않는다.

“선생님 J가 없으니 이상해요.”

J는 시골의 작은 학교로 전학을 갔다. 우리학교는 두 개의 대단지 아파트 숲속에 세워진 학교이다 보니 다른 학교에 비해 경쟁이 첨예하다. 교우 관계나 학업성취 등 다양한 사태에 특별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풍토에 어려움을 느껴오다가 J만을 위한 길을 찾아보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작은 시골학교를 선택해서 늦은 밤까지 지속되는 학원전쟁이나 친구들 간의 무한 경쟁은 잊고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찾아보는 기회를 얻기 위한 선택이란 학부모님의 의견에 아쉽지만 격려의 박수를 쳐 주었다.

24평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크고 작은 경쟁과 견제, 격려와 질투가 모여 성취의욕을 촉발시키기도 하고 타인을 위해 넉넉히 양보하기도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곳이다. 늘 성공하는 일, 칭찬 받는 일들만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라 때론 꾸중을 듣기도 하고 친구들의 관심부족이나 학업 성취 부족을 아파하기도하며 성장의 가속도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실패보다 성공을 기원하지만, 실패 또한 훌륭한 스승이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신선한 촉매제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곳이다. 한 발 후퇴하는 일을 통해 두발 세발을 전진할 기회를 제공 받았다 생각하며 교사와 함께 느긋하게 재도전하는 일을 배우는 곳이다. 어린친구들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실시간으로 실습하며 아름다운 내일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작지만 위대한 24평의 공간이다.

J야! 그 곳에서 네 몫의 멋진 길을 꼭 찾아보렴.
 
신애리(수정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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