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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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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7  23: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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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1)

“곧 죽을 늙은이처럼 허무감은 무슨. 하여튼 됐다. 그 쯤 해두고 보자.”

“꼭 약속 받고 싶다. 돈이란 요물이라서 나갈 구멍 보고 들어온다더니 엄마가 우리 생각을 지원해 주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오늘은 그만하자. 아, 이 압박감. 벌써부터 골이 지끈거린다. 내가 무슨 고깃덩거린가 우찌 뜯어먹을 사람만 많은지.”

기분 잡친 듯 투덜거린 호남이 먼저 차에 올랐다. 샐쭉한 호남의 기색이 언짢게 보였지만 꼭 해야 될 말을 한 끝이다. 양지는 대단히 큰 일은 쉽게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이미 꿰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한 제의를 한 것만으로도 마치 꿈꾸던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아주 후련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부자라도 된 듯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느라 들떠있던 양지는 결론나지 않은 시간을 돌이켜 본정신으로 돌아오자 아리고 부러운 심정으로 착잡해졌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던 옛말이 자꾸 실감 나 머리 흔들어서 그 생각을 털어냈다. 사촌이 아니라 바로 친형제간이라도 인정해야 될 것은 주머니의 주인이 다른 점이다. 이렇게 옴부랍고 용렬한 것이 언니라니, 내심 부끄럽기도 했지만 현실은 엄연한 법.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호남을 설득하고 이끌어야할지, 요컨대 앞으로는 어떤 그럴사한 기회 어떤 방법을 창안해 내야할지 그게 관건이 될 터였다.

며칠이 지났지만 호남은 여전히 양지가 듣고 싶은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다. 시간만 나면 해대던 안부전화조차 뜸했다.

건강하게 움직인다면 늙어 죽도록 굶을 염려는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마다 시름없이 멍하니 서 있거나 휙 스쳐가는 허무감을 의식할 때가 많다. 얻은 것이 있다면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의 장래가 어머니나 아버지만하기 어렵다는 암암한 각성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길은 직선 뿐 아니라 곡선도 필요하다. 직선만 바람직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나 곡선도 수용을 해야만 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 모두 어울려서 인간의 숲이 된다. 그 속에는 남들은 다 탈 없이 잘 살던데 우리만 왜 이렇게 지뢰가 묻혀있는 가시밭 너덜겅 같은 길을 가야하는가. 그런 자탄도 같이 숨 쉰다. 굴러가는 열차에 타고 있으면 어김없이 닿게 되어있는 다음 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할 것인지 아무런 목표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내리거나 내리지 않은 것에 상관없이 기차는 새로운 승객으로 객실을 채우고 역을 떠나면 그만이다. 결국 생명 있는 것들 모두는 전범의 행로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을, 그처럼 아등바등 날뛰며 나만의 것이라고 목표삼아서 붙잡으려했던 것의 실체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예술을 하는 여자들은 예술작품으로 자기 인생을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무엇을 해놓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증명할 것인가. 기껏 밥벌이에 매달렸던 것 밖에 꼽을 게 없었다. 다른 여성들처럼 남편과 자식이 있다면 사십 대는 안정되고 충만한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양지는 남들은 축복의 계절이라는 이 시기를 빼도 박도 못하는 말뚝처럼 엉거주춤 서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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