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2)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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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2)
커다란 맨홀의 출구처럼 보육원 설립에 대한 양지의 강한 의지는 마치 생의 동아줄처럼 그녀의 영혼을 지배했다.

오랜만에 연락한 우먼파워 시절의 친구는 후배에게 밀리는 소외감과 절망을 숨기지 못하고 술과 마약에 의지한 생활을 하다 연행되기도 했다. 외롭고 허무하다고 했다. 호남의 가게에서 종종 목격하는 멋지고 똑똑한 독신녀들도 여자가 가진 체력의 한계 때문에 술 취한 비틀걸음을 걷다 길에 쓰러져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힘없고 볼썽사나운 추태를 보이기 일쑤다. 달려와서 나무라며 데려 갈 가족이나 관심을 가질 그 누구도 없는 나이 많은 독신여자의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배경이 바로 양지 자신의 초상인거였다.

귀남이 때문에 따질 곳이 어딘가 곤두세운 검지를 휘두르는 어느 날, 인내나 체면으로 보자기 포장을 하고 있던 누군가의 삶을 엿보게 된 일이 생겼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는 용구다. 큰 물건은 큰 보자기로 작은 물건은 작은 보자기로. 보자기에 싸인 물건은 아무나 내용물을 볼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 입이나 눈도 그렇다.

백화점 물건처럼 고상하게 잘 포장된 겉모습을 보고 전생에 나라 세운 공이라도 세운 사람들의 분복이냐고 이웃들은 부러워하고.... . 마침내 부풀어서 터질 때까지 경제력 있고 인품 좋고 사회적 역할이나 덕망도 높은 사람, 차일처럼 큰 보자기에 가려있던 고종오빠네의 경우가 그랬다.

식육점 올케언니가 앓아 누었다는 말을, 그것도 종업원에게 듣고 양지가 문병을 갔을 때였다.

“본인이 언충 사람 만내는 걸 싫어하니 깨, 동생한테도 일부러 말 안했어.”

“왜 어떻게 편찮으신데요?”

“내가 보기엔 병도 아닌 것 같은데, 의사 말이 입원해서 안정을 취해야 된다네. 요새는 참 별 병도 다 있어.”

“병명이 뭐라는데 그러세요?”

“우울증”

“아유 오빠도 에나 구식분이시다. 요즘 현대병이 우울증인 걸 모르니까 그렇죠. 그런데 오빠의 부인도 오빠도 그런 병하고는 가까울 아무 조건도 없는데, 좀 그렇긴 하네요.”

“그게 참 그렇네, 남이 알까 겉으로 말도 몬하고, 우리 밥쟁이가 좀 촌시럽기는 해도 예의 없이 막된 사람은 아닌데….”

오빠는 아주 목소리를 낮추었다.

“물론이죠. 저도 언니가 손님이나 이웃들과 지내시는 것 보고 잘 알지예.”

“내 이런 말 털어놓기는 내 낯에 침 뱉은 꼴이라 부끄럽지만 동생도 남의 집 며느리 될 사람이니깨 참고 삼으라꼬 부끄럼 무릅쓰고 털어놓네. 듣고 우리 생각이 모자란 점 있으면 충고도 좀해 주고. 우리 내외 나이도 있었고, 늦게 얻은 아들이니 집사람이 그야말로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어질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지극정성 키운 아들이라. 속살로는 좀 오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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