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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97) 칠불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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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8  19: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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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지리산 칠불사를 찾았다.


가을의 들녘은 뿌려서 가꾼 자인 농부들의 몫이고 가을의 강은 먼 길 찾아 온 기러기의 몫이며 가을의 산은 바지런을 떠는 다람쥐의 몫이지만 가을의 길은 길 떠나는 나그네인 여행자의 몫이다.

그래서 가을이 오면 어딘가는 몰라도 그냥 떠나보고 싶어져 역마살이 충동질을 하는 계절이다. 사주에 타고난 역마살로 속절없는 유량의 삶을 그린 김동리 선생의 소설 ‘역마’의 배경 속으로 70년의 세월을 거슬러서 화개장터의 옥화네 주막에서부터 엄마의 이복동생인 줄도 모르고 러브스토리를 엮으며 성기가 계연이와 함께 걸었던 칠불사 가는 길을 되밟을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면 사연 많은 풍광들이 발목을 붙잡는다. 애달픈 역사가 굽이굽이 서린 강, 주옥같은 옛 노래가 흘러가는 강, 하고많은 소설로 이어지는 강, 시인묵객 가슴속에 꿈을 꾸는 강, 바라만 보아도 가슴 저린 강! 정취에 매료되면 오도 가도 못한다. 딴마음 들기 전에 백사청송 붙잡아도 본체만체 외면하고 악양동천 평사리도 다시 오마 뿌리치고 화개장터에 차를 세웠다.

사시사철 시끌벅적한 화개장인 줄이야 이미 알지만 오전 일찍부터 꽤나 부산하다. 등산복 차림의 산객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산약초 가게마다 차를 끓이는 냄새가 사방에서 풍기는데 각설이엿장수는 연지곤지 분단장에 속곳이 들어나게 치맛자락 걷어 올려 허리춤에 동여매고 장구를 들쳐메고 조이개를 죄는 품이 신명나게 한바탕 놀아볼 요량인지 차림새를 다 갖췄고 대장간의 쇠메소리는 아까부터 시작됐다.

성기는 지금쯤 어느 고을 장터에서 육자배기의 구성진 가락으로 엿가위 질을 하고 있을까. 천복을 타고 날 것이지 하필이면 시천역의 역마살이 무어람. 성기의 사주로는 홀어미 옥화의 곁에서 화개장터의 책장수로 살아가기에는 애당초에 틀렸으니 팔도유랑의 엿장수가 속절없는 팔자이다.

역마 속에 늘어섰던 주막집의 옛 정취는 흔적이 없는데 골을 지어 늘어선 가게마다 온갖 약초들이 산더미 같이 빼곡하게 층층이 쌓여서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찾는 이를 기다린다. 시음용 약차를 한 잔 얻어 마시니 향긋한 한약내음이 머리를 맑게 한다.

발길을 돌려서 골목안의 옥화주막을 찾았다. ‘소설 역마의 옥화주막’이라는 간판아래 동동주, 선지국, 파전 등 먹음직스런 차림표가 빼곡히 적힌 문으로 들어섰다. “주모!”하고 크게 불러볼까 하다가 선착한 나그네들이 둘러앉아있어 빈자리를 잡았다.

예쁘장한 아낙이 혼자서 바쁘다. 주모인 옥화는 출타를 하였을까, 성기의 소식이라도 들은 걸까, 계연의 혼사기별이라도 받고 구례로 갔을까, 하룻밤의 연정으로 성기를 잉태시키고 강원도의 어딘가로 떠나버린 떠돌이중의 행방이라도 찾아 나섰단 말인가,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불러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체장사의 부음이라도 받은 것일까. 소설 속의 36년 전, 이름도 모르는 남사당패와의 단 하룻밤의 동침으로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천도 재라도 올리려고 칠불사로 갔을까. 허름한 초가지붕을 마주하고 앉으니 머릿속은 온통 역마의 소설 속을 헤매고 있다.



 
옥화주막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옥화주막이 있다. ‘소설 역마의 옥화주막’이라는 간판아래 나그네들에게 동동주, 선지국, 파전을 차려낸다.


파전안주에 동동주 한잔으로 입을 가시고 칠불사 가는 길로 발길을 돌렸다. 십리벚꽃 길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데 쌍계천 건너로 보이는 진초록의 산기슭은 ‘왕의 녹차’로 유명세를 떨치는 녹차 밭이 띄엄띄엄 줄지어 늘어섰다.

쌍계사주차장 맞은편에서 야생녹차박물관으로 건너가는 널따란 다리와 쌍계교 앞을 지나면 이내 또 하나의 다리에 ‘목압문’이라는 초서현판이 붙은 일주문이 다리목에 우뚝 섰다. 목압마을과 국사암으로 건너가는 ‘목압교’이다. ‘천년터전 다향목압’이라는 주련까지 붙었다. 진감국사께서 길지를 찾아 앉으라고 나무기러기를 깎아서 날려 보낸 곳이라 하여 ‘목압’(木鴨)이라하고 기러기가 내려앉은 곳에 국사암을 지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며 진감국사께서 830년에 중국에서 갖고나온 녹차씨앗을 뿌렸다니 1200년에 가까운 옛 세월이 흘렀으니 ‘천년의 터전 차의 고향 목압’이라고 할만도 하다.

맑은 물과 바윗돌이 계곡의 멋을 내고 고산준봉 어울러져 그림 같은 풍경인데 소품처럼 내려앉은 건물이 심산계곡에서 품평회라도 여는 것일까, 제마다 모양새가 다른 크고 작은 집들이 녹차를 덖어서 차를 만드는 제다원이고 펜션이며 민박집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굽이진 길을 따라 범왕교를 건너니까 검버섯과 푸른 이끼가 희끗희끗한 웅장한 돌탑이 수령 250년의 서어나무 아래서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옛 세월을 지키는데 오가는 이들의 쉼터로 평상을 마련했다는 팔순을 넘긴 토끼봉 산장의 최성래 할아버지는 빤하게 보이는 원범왕 마을 뒷산을 가리키며 옛 얘기를 들려준다. 커다란 호랑이바위가 입을 크게 벌리고 내려다보고 있어 마을에는 악귀가 범접을 못한다면서 6·25의 3년 전쟁이 여기서는 빨치산 잔당 토벌까지 10년 전쟁이었다며 피아가 밤낮으로 뒤바뀌는 공포와 불안의 나날에도 희생된 주민이 없었고 전국을 휩쓸며 창궐했던 호열자도 범접하지 않았다며 비보의 돌탑을 쌓으라고 일러준 노스님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며 범바위가 빤하게 보이도록 나무를 좀 잘라 달래도 젊은이들이 말뜻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며 손주들조차 객지로 떠났으니 수로왕이 머무셨던 대궐 터와 벽소령 넘나들든 옛 얘기조차 전할 길이 없다며 못내 아쉬워한다.

범왕교를 지나고부터 길은 꼬불거리며 가팔라지고 이내 널따란 주차장에 ‘지리산 칠불사’라 쓰인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나뭇가지 사이로 기와지붕이 어름푸시 보이는데 외숙 장유화상보옥을 따라 온 일곱 왕자가 성불을 하면 그 모습을 비춰질 것이라는 말대로 가락국의 수로왕이 부인 허황후와 함께 부처가 된 일곱 왕자의 모습을 보았다는 영지에는 울창한 수목의 그림자만이 영롱하게 비췬다. 맞은편 둔덕의 칠불사 사적비 뒤로 세월의 무게가 역력한 부도탑이 반야봉 깊은 골을 조석으로 울릴 것 같이 범종을 빼어 닮았고 이내 주차장을 겸한 널따란 마당 한 가운데에 새까만 오석으로 배례석이 놓여 있다.

네댓 단의 층을 지운 층층의 돌계단은 웅장하고 ‘동국제일선원’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붙은 문루는 장엄한데, 문루 안마당으로 돌계단은 이어지고 대웅전 안으로 금빛 본존불이 빤히 보여 배례석에 올라 삼배의 예를 올리고 문루 안으로 들어섰다. 높다란 대웅전의 왼편엔 초의선사께서 정진하셨던 아자방은 중수중이고 문수전 앞마당에도 배례석이 마련돼 있어 예를 올렸다. 칠불의 스승인 문수보살의 상주도량 칠불사는 청명, 벽송, 서산 등 고승대덕의 수행처였고 지금은 가야 불교연구의 중심의 축으로 우뚝하게 섰다.

윤위식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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