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강문순 (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여성칼럼]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강문순 (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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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중에 특히 눈길이 가는 일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지난 8일에 시작되어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는 산불이다. 미국 스스로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라고 이름 붙인 것처럼 그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멀리서 보기에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른 하나는 헐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지속적인 성추행사건이다. 10월 5일 뉴욕타임즈의 폭로 기사로 시작된 이 성추행 사건의 여파는 와인스타인이 자신이 경영하는 와인스타인사에서 해고되는 것으로는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전력이 폭로되고 그 이후 헐리우드와 미국시민들의 반응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이 사건은 산불만큼이나 거센 속도로 휘몰아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소용돌이처럼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휘두르는 ‘갑질’의 일상성이다. 크든 적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갑질’, 특히 ‘성적 갑질’은 나라를 불문하고 너무나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어서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호식이두마리치킨 사장의 성희롱 등, 2017년 내내 이런 ‘성적 갑질’이 보도되었었다.

두 번째는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는 증언들이다. 그 오랫동안 성범죄를 저질러 왔음에도 여태까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로 감추어져 왔던 것이 한 번 피해를 밝히기 시작하자 피해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고 이러한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어닥치고 있다. 이러한 증언이 이어지는 것에는 다른 피해자들의 용기와 지지자들의 응원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목까지 차오른 피해자들의 분노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성적 갑질’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쌓이고 쌓인 분노가 이러한 피해 증언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이 이 사건의 진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으로서 헐리우드에서 말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메릴 스트립이 공식적으로 와인스타인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안젤리나 졸리와 기네스 펠트로와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고 나섰다. 동료 남성 배우 제작자들 또한 와인스타인의 성추행범죄를 비난하고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목소리에 동참하였다. 이런 분위기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확장시키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의 분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차오르고 그래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피해를 말하는 데 까지는 이르렀지만, 아직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발언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적 갑질’의 일상성과 피해자들의 분노가 켜켜히 쌓이고 그래서 이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말 할 수 있는 권력자들의 도움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지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려면 일반적인 ‘갑질’ 뿐만 아니라 ‘성적 갑질’ 또한 사라져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적극적인 공감과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문순 (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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