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감성(感性)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가을 감성(感性)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10.22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산정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이제는 눈앞까지 내려왔다. 행복하게도 지리산자락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가을을 빨리 느낀다. 추색 완연한 이 시기는 감성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시인이 된듯하다. 그러나 가뭄에 바싹 말라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마냥 메말라 있는 감성은 좀체 일어나지 않아 결국 옛사람의 시를 한 수 읽으며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다.

茅齋連竹逕(모재연죽경)秋日艶晴暉(추일염청휘)果熟擎枝重(과숙경지중)瓜寒著蔓稀(과한저만희)遊蜂飛不定(유봉비부정)閑鴨睡相依(한압수상의)頗識身心靜(식파신심정)棲遲願不違(서지원불위)/띳집은 대숲 길로 이어져 있고 가을 햇살은 맑고 곱기도 하다/열매는 익어서 가지가 늘어지고 오이는 끝물이라 덩굴에 드문드문 달려있다/떠도는 벌은 날갯짓 그치지 않고 한가로운 오리는 서로 기댄 채 졸고 있다/자못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는 줄 알았으니 유유자적 살려든 꿈 이루어지길 바라노라/여섯 왕을 섬긴 조선 전기 대표 문인인 서거정의 ‘추일’을 가만히 읽으니 “그래, 바로 이거야”라는 감성이 올라온다.

‘한시마중’의 저자 이종묵은 서문에서 ‘예부터 한시는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처럼 일상의 다반사 중 하나였고 그래서 한시는 아름답다’라고 했다.

이러한 서정적 분위기에 빠져 있는 고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냐고 소리치듯 내 스마트폰에는 실시간으로 가을 풍경이 올라오고 있다. 산에서, 공원에서, 들에서 모두들 가을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는 그것을 혼자 보기에는 아깝다고 자랑을 해댄다. 가을걷이에 마음 바쁜 농부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너도 떠나라고 한다.

확실히 SNS는 문화를 바꿔놓았다. 최근의 트렌드는 낯선 곳에서의 이러한 경험과 정보를 즉시 불특정 다수와 공유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소통하고 공유하는 모습은 이제 전혀 낯선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거나 관광지, 숙소, 식당 등을 찾을 때도 SNS에서 봤던 것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이제 공유의 개념은 단순한 정보의 공유를 벗어나 경제적 공유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각 지자체는 SNS를 통한 홍보와 민원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농부들도 농사짓는 전 과정을 소개하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아 직거래 판매를 늘리고 있다. 유유자적 살려든 꿈이 변화의 물결을 따라가자니 고달프기도 하지만 낙엽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나도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오늘도 힘을 내게 한다.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