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4)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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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4)

미혼 때 같으면 열일 제쳐놓고 마중부터 나오곤 했던 아들. 그동안 들어도 예사롭게 넘겼던 남의 말들이 시래기두름처럼 현동 아내의 목젖을 꿰고 치올라왔다. 드나드는 손님들이나 지인들의 눈에 아들의 행적은 왜 그렇게 자주 눈에 띄는지. 유명관광지에서, 또는 유명 음식집에서 처가 식구들과 온 것을 보았다는 소리는 손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이 들었지만 예사로 넘겼다. 시부의 제삿날도 그와 비슷했다. 하마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는 아들에게 지금 어디쯤 오느냐고 물으니 사무실의 연결로 알려진 행선지는 장인장모와 외국여행을 가는 중이라고 제 식으로 말했다. 점점 멀어지는 아들에 대한 충격은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지난 봄 첫 손자를 보러갔을 때였다. 집에서는 자기 숟가락도 안 챙겨 먹은 것은 물론 집안 일에는 손끝도 안 댄 귀한 아들이 부엌 설거지는 물론 아내의 속옷까지 빨래해서 널고 아내의 다리를 주물러 주며 희극배우처럼 시시덕거리는 거였다. 사회가 온통 며느리들 세상으로 판이 바뀌고 있다는 들은 소리의 현장 가장 깊은 곳에 아들은 이미 안착해 있었던 것이다. 세상 따라 부모도 바뀌어야지 무언가 부정적인 내색을 보이는 순간 며느리에게 질투를 한다 할까봐서 상하는 속을 혼자 달랬다. 제 가족을 위해서 아들이 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고부갈등이라는 것도 없어질 터이기에.

장현동의 아내는 그날 여러 개의 짐을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 마지막 고속버스를 타야했다. 혹시 마중 왔던 며느리와 길이라도 어긋날세라 하고 싶은 소변까지 다리를 꼬며 참고 버티다 통화가 되면 악, 소리부터 먼저 지를 것 같은 극한 울화를 누르다 못해 전화를 걸었지만 아들의 아랫사람은 퇴근하신 것 같다고 연속극 대사처럼 전했다.

이튿날 며느리의 전화가 왔지만 거기도 뭔가 장현동의 아내가 미리 알아차렸어야 할 기미는 있었다. 그러나 순박한 올케는 예의 없던 자신의 방문 때문에 부부 싸움이라도 한 거라 짐작하고 얼러 키운 자식이라 그러니 네가 좀 잘 봐 달라고 오히려 며느리께 먼저 사과를 했다. 바쁘다고 서로 미루다 설마가 아차로 바뀐 모양이라는 결론도 이미 내렸던 참이니 말이다. 애써 괘씸함을 누르며 이전대로 대범하고 온화하게 대하려했다. 그러나 올케는 또 다시 뒤로 나자빠지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에 따른 며느리의 반응은 오물 한 상을 퍼 던지는 꼴이었다.

“전에도 제가 말했잖아요. 친정집에서 가져 온 것도 다 못 먹는다고, 애써 시골 집 반찬 만들어 오실 필요 없다고. 솔직히 말하면 전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반찬들 모두 경비실에 주었어요.”

그날부터 현동의 아내는 식욕도 잃고 넋도 잃은 듯이 멍하게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현동은 밖에서 들은 대로 요즘 시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한다고 가져간 반찬도 경비실에 맡겨놓고 그냥 와야 좋은 시어머니 소리를 듣게 된다는 말이며 주책없는 시댁 식구들 때문에 현관문의 자물쇠도 숫자 버튼으로 자주 바꾼다더라는 등의 정보도 들려주며 위로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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