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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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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4  23: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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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6)

“서울 살다 온 제 눈으로 봐도 마구 받아들인 서양문물이며 주도권 문제로 부부간의 사고에 대한 격차가 학벌이며 문벌이며 경제력까지 복잡하게 얽혔는데 그게 극복되는 동안 넘어야 될 파동은 여간 아닐 걸요. 아까운 재능을 집에서 썩히는 것은 사회적인 큰 손실이라 부추기니까 약빠른 황구 제 눈에 백태 낀 건 모르고 구정물통 밑바닥에 있는 밥티 한 개를 먹기 위해 물 한 동이를 다 들이킨다는 고사와 비슷해요. 여자들 참 힘들지요. 그런데도 여자들은 밖으로 나갈 준비로 분주하거든요. 히스테리는 오죽할까요. 그 히스테리의 파편은 고스란히 어디로 튀겠어요? 되돌아보면 제 친구 현태어머니 말씀이 참 명언이었어요. 요즘은 시어머니도 옛날하고 많이 달라요. 언니는 문화재감 성품을 가진 시어머니에 속할 거구요. 엊그제 호남이 가게 종업원이 재미로 읽어보라고 준건데 우스개로 한 번 들어보실랍니꺼?”

양지는 가방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펼쳤다.

“어느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거기 답하는 시어머니의 편집니더. 좀 길지만 우울한 오빠 기분을 풀어드리는데 맞춤한 내용이라예. 이 시대 고부간의 심리가 얼마나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지. 자 읽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보세요. 우리는 당신들의 기쁨조가 아닙니다. 나이 들면 외로워야 맞죠. 그리고 그 외로움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요. 자식 손자, 며느리에게 인생의 위안이나 안전을 구하지 마시고 외로움은 친구들이랑 달래시거나 취미생활로 달래세요. 죽을 땐 누구나 혼자입니다. 그 나이엔 외로움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고 나이 들어서 젊은이같이 살려는 게 어리석은 겁니다. 마음만은 청춘이고 어쩌고 이런 어리석은 말씀 좀 하지 마세요. 나이 들어서 마음이 청춘이면 주책바가지인 겁니다. 늙으면 말도 조심하고 정신이 쇠퇴해 판단력도 줄어드니 남의 일에 훈수드는 것도 삼가야 하고 세상이 바뀌니 내 가진 지식으로 남보다 특히 젊은 사람보다 많이 알고 대접 받아야한다는 편견도 버려야합니다. 나이 든다는 건 나이라는 권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이 소멸해 간다는 걸 깨닫고 혼자 조용히 물러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몇 개월에 한번을 하든 일 년에 한 번을 하든 아니면 영영 하지 않아도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세요. 그것 가지고 애들 아빠 그만 괴롭히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설날에 큰애 작은애 데리고 몰디브 여행 가니까 내려가지 못해요. 그렇게 아시고 10만원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해 놓았으니 찾아 쓰세요.”

팔짱을 낀 오빠는 양지가 읽는 글을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듣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답장이 또 있어요. 들어보이소. 고맙다 며늘아. 형편도 어려울텐데 이렇게 큰 돈10만원 씩이나 보내주고. 이번 설에 내려오면 선산 판 90억 하고 요 앞에 도로난다고 토지 보상 받은 60억 합해서 3남매에게 나누어 줄랬더니 바쁘면 할 수 없지 뭐 어쩌겠니. 둘째하고 막내 딸에게 반반씩 갈라주고 말란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여행이나 잘 다녀와라. 제사는 이 에미가 놉을 사서 제수 장만해서 모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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