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09)
“아무리 그렇지만 이 자리가 어떤 자린데 애기를 이런 데다 눕힙니꺼.”
나무라는 양지를 상대하기보다 놓쳐버린 여자에 대한 미련으로 안타까운 숨결을 헐헐거리던 하 씨가 양지에게로 선뜻 아이를 넘기려 했다.
“야나 좀 받아주이소. 이라고 있을 때가 아입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이유라도 알아야 회장님 내외분께 아아를 델다 디리도 디리지요.”
“얘가 그럼 회장님 손주란 말입니꺼?”
“글타카이요. 가타부타 말 한 마디 없이 덜렁 언나만 델다놓고 가모 어른들은 대체 우짜라꼬 그라는지.”
그제야 퍼뜩 생병 난 고종올케나 오빠를 향해 몰려오는 어떤 해일이 감지됐다.
“제가 가볼거니까 언내나 남들 눈에 안 띄게 얼른 안고 들어가세요.”
하 씨에게 말을 던진 양지는 여자가 사라진 골목 밖으로 줄달음질쳐 나갔다.
차들이 다니는 큰 길로 숨 가쁘게 달려간 양지는 마침 도착한 택시에 한 발을 올리고 있는 여자의 뒷덜미를 가까스로 잡아챌 수 있었다.
“놔요, 놔!”
양지에게 잡힌 몸을 뒤채면서 여자가 역정을 냈다.
“어쨌든 내리세요. 아저씨 미안합니다. 큰 일이 나서 그래요.”
양지가 양해를 구하자 택시는 곧바로 떠나고 어쩔 줄 모르는 난처한 표정으로 여자가 변명을 한다.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튼 어디 찻집으로 좀 들어가요. 나는 그 집 회장님 동생이니까 이대로 그냥 못 돌아가실 줄 아세요. 아시겠죠?”
강단 있게 선언하는 양지의 기세에 눌린 여자가 조금 기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찻집에 앉아 마주보니 보통 집안의 어머니들처럼 평범하고 원만해 보이는 인상이다. 천리 먼 이곳 시댁까지 젖먹이를 데리고 와 어른도 아닌 종업원 손에다 얼렁뚱땅 떠넘기고도 양심가책 없을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여자가 아는 대로 정보를 캐내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던 것이 양지에게 큰 힘을 주었다.
“차는 뭘로 시킬까요?”
“그저 아무 거나요.”
날라져 온 커피를 여인이 마실 때까지 양지는 아무 말 없이 뜸을 들였다. 그러고도 한 참 후 양지는 건너편의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사님, 이제 자초지종을 여사님이 아시는 대로 좀 알려주세요. 보아하니 여사님도 일찍 보셨다면 손주도 있으실만한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아는 대로 좀 말씀해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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