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교육혁신의 효과를 기다리는 여유
김정섭 (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경일포럼]교육혁신의 효과를 기다리는 여유
김정섭 (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10.2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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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정감사에서 혁신학교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논쟁이 치열하다. 혁신학교가 실패하였다는 주장이나 성공하였다는 입장은 동일한 현상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 서로 다른 철학과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의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기 쉽다. 특히 어떤 현상을 해석할 때 정치적 의미를 반영하는 순간 그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성이 높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한 현상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여 피해를 더 키운 역사적 사건 하나를 회상해 보자. 임진왜란일 일어나기 직전에 선조는 일본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황윤길과 김성일을 사신으로 일본에 보냈다. 일본의 전쟁준비 상태를 직접 보고 온 황윤길과 김성일은 선조에게 일본의 정세를 서로 다르게 보고하였다. 황윤길은 일본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하였고 김성일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어리석은 선조는 잘못된 보고를 더 믿었고 그 결과 조선의 백성들은 7년 동안 전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것은 정치적 입장이나 목적에 따라 어떤 현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교육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논할 때 우리는 외국의 사례에서도 배울 것이 한 가지 있다. 미국은 저소득층 유아들에게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65년에 Head Start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지금도 여전히 운영하고 있다.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해 논의할 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것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므로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소득층 아동들의 인지능력과 사회 정서역량을 높이고 있다는 연구보고서에 기초하여 성공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저소득층 출신 사람들 중 30년 뒤에 양질의 직업을 가진 사례가 많다는 것을 통해 교육적 효과를 입증하려는 노력도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은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을 아직도 지속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은 1970년대에 사교육이 심해지고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엽기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사례가 증가하자 30년 전에 유도리 교육을 시작하였다. 유도리 교육정책은 학교교육과정을 절반으로 줄이고 학생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 동안 유도리 교육 때문에 일본의 PISA 순위가 낮아졌다는 비판도 많았고 실제로 일본 청소년의 학업성취도는 약간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유도리 교육을 고수하고 있으며 분명한 효과도 얻고 잇다. 예전에는 한국 청소년들에 비해 일본 청소년들의 체격과 기초체력이 현저하게 낮았으나 최근 일본 청소년의 기초체력이 한국 청소년의 기초체력보다 더 높아졌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이는 과연 일본의 유도리 교육이 실패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혁신학교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논의할 때 학생들의 학력뿐만 아니라 신체 및 정신 건강지수도 함께 고려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학생의 지금 당장의 학업성취도 한 가지만 보고 교육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지 말고 진정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즉, 교육이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미래의 큰 이익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을 백년지대계라는 믿음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그 효과를 기다리는 여유가 요구된다. 이제 우리도 20-30년이 지나 혁신학교 졸업자들이 성인이 되고 난 뒤에 보여주는 역량과 삶의 질을 보고 혁신학교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기다림의 미학을 누려보자.


김정섭 (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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