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0)
  • 경남일보
  • 승인 2017.10.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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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0)

천리 먼 시골의 작은 도시에 살지만 시골 사람 같지 않은 양지의 태도나 자신에 대한 호칭에 여자는 적이 사리는 모습을 보였다.

“저는 여사님 소리를 들을 만한 인야도 못됩니다. 그저 애기 외할머니가 친구라 친구의 부탁으로 그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다가 애기까지 돌보게 됐을 뿐이고…….”

“여사님, 저는 지금 여사님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를 안고 여기까지 오시게 된 이유가 궁금한 겁니다. 저도 서울생활을 해봐서 서울사람들 깍쟁이 근성이 있다는 것도 아는데 여사님한테서는 저의 어머니와 다름없는 푸근함이 느껴져서 말씀 드리기도 훨씬 편하고 좋습니다. 말씀해 주시겠죠?”

앞에 놓인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다 도로 내려놓은 여인은 한결 차분해진 손길로 가방에 든 손수건을 꺼내더니 별로 땀 난 것 같지도 않은 이마부위를 자근자근 누르듯이 훔치더니 얼굴 전체를 두루 문질렀다. 그러고는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양지에 대한 호의를 의식한 듯 품고 있던 심중을 털어놓았다.

“오늘 한 짓을 생각하면 제가 이런 말할 자격은 없는데, 앞으로 젊은 사람들 일이 참 문젭니다. 여자들은 직장 생활하는 틈틈이 애도 낳아서 길러야 되고 살림도 해야 되는데 이게 앞으로 나가는 발전인지 망할 징존지 정말 구별이 안돼요. 그렇다고 배운 지식을 아깝게 썩히는 거는 골 아프게 해낸 공부가 무용지물이 되고.”

“그렇죠. 저도 한 때 그런 고민을 무척 많이 했던 사람 중 하나라서 여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이 집도 물론 그런 문제로 갈등이 심했을 거구요.”

“아유, 연애할 때는 죽고 못 살던 게 언제 적 일이냐 싶게 날마다 싸웠지요. 제 친구가 참 곱게 키워서 제 숟가락 하나도 안 챙기고 공부만 한 딸이니 성격도 똑 부러지고 남한테 뒤지고는 못살아요. 외국 유명대학에서 박사까지 돼서 돌아왔으니 오죽하겠어요. 신랑도 거기서 만났더라지요 아마. 우리 때 같음사 결혼을 하면 자식낳이를 우선으로 쳤는데 요새 사람들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연구 성과를 내야 되고 승진도 해야 되고 눈코 뜰 새 없이 일에 매달리니 옆에서 보는 저도 저 엄마 하는 것 같이 옷 입는 새댁에게 밥을 떠 멕여 줄 때도 있지요. 그러니 임신하고 출산하는 그런 일을 자꾸 미루고 나중에는 어린애를 어디서 하나 사오면 안 되느냐는 소리까지도 나왔지요.”

“결국 저렇게 버릴 아이를 낳기는 왜 낳았대요?”

“남자들하고 달리 여자들 몸이 안 그렇습니까. 일순간 실수로 임신은 했지만 날 가고 달 가고 낳고 기르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 책상 위에 어질러진 책 정리 정리하듯이 마무리 될 일인가요.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들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해요. 신랑이 어린애 키우는 동안만 휴직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말만 안했어도 또 이런 지경까지는 안 왔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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