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대한민국] 전쟁 속에 첫 지방선거
[증언:대한민국] 전쟁 속에 첫 지방선거
  • 경남일보
  • 승인 2017.10.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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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영(언론인,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
1952년 3월 19일자 물레방아에는 시읍면의원 후보자의 면면을 꼬집는 단평이 실렸다.



내년 6월 13일 치러질 7대 동시 지방선거가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추석을 전후로 예비주자들이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면서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조기 과열이 우려되지만, 유권자로서는 검증 시간이 길어져 나쁠 게 없어 보인다. 정작 걱정되는 것은 탄핵 후유증과 북핵, ‘적폐’와 ‘보복’으로 팽팽한 정치권 갈등, 그리고 다당제가 잘못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해서다.

우리나라 역사상 지방선거가 처음 치러질 때는 불행하게도 전쟁 중이었다. 1952년 4월 25일 실시된 시읍면의원 선거는 한강 이북 수복되지 않은 지역과 전북 관내 지리산 인근 8개면이 연기되었고, 5월 10일 치러진 도의원 선거는 완전 수복되지 않은 경기도와 강원도 서울특별시가 제외되었으며, 전북의 남원 등 4개 군은 치안문제로 연기되는 등 온전한 선거가 아니었다.

1948년 지방자치가 제헌 헌법에 명문화되고,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 공포되었지만 정세 불안과 치안유지를 이유로 연기해둔 상태였다. 그랬던 것을 제헌의회 지지를 바탕으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이승만이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재선이 힘들 것으로 예상되자 직선제로의 헌법 개정 지지세력 확보를 위해 궁리해낸 것이 지방선거였다.

선거 결과 시읍면 의원 경우 91%라는 높은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42.5%의 무소속 당선자와 함께 자유당을 비롯해 대한청년단,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 친여 성향이 56.6%로 과반수를 넘는 당선자를 확보함으로써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과 발췌 개헌으로 이어지는 장기 집권의 바탕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선거 분위기는 어땠을까.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낯설고 서툴렀다. 3월 6일부터 입후보 등록이 시작되어 후보자들의 얼굴이 알려지자 경남일보는 고정란 단평(短評) ‘물레방아(3월 19일자)’를 통해 면면들의 인물됨을 꼬집고 있다.

“시의원은 감투가 아니거늘, 자신 역량의 척도를 잘 알으셔야 할 일, 기지도 못하는 풍신이 날려고 해서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란 걸. 따라서 장 가는 어중이떠중이 정말 참 꼴불견 가관이거든! 허기야 시키면 못할 리 없겠지만 개중에는 시장(市長) 자리 꿈꾸고 나선다니 포복절도야…”며 꼬집었다. 시의회에서 간선으로 시장을 뽑게 되어 있었으니까 누구나 시장 꿈을 꿀 수 있었을지 모른다.

 
1952년 3월 28일자 물레방아에는 시도의원 선거비용에 관한 단평이 실렸다.


물레방아(3월 28일자)를 하나 더 인용하면 “시의원 출마자가 71명, 도의원 출마는 몇 명이나 될까. 시의원에 다 나가고 도의원 나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수군수군. 한데 시의원 71명의 선거비는 평균 5백만, 추산하면 물경 3억 원야…벌써 5백만 원을 훨씬 넘어 쓰신 분이 계신다는 말…이판저판 쓰는 판에 주린 뱃살 먹이고나 볼 판인가…먹는 표가 큰소리 한다면 앞으로 일이 낭패낭패…”

물레방아가 지적한 5백만 원은, 당시 경남일보 물가시세표에 따르면 춘궁기로 선거 초기에 쌀 한 되 6500원이던 것이 나중엔 8300원으로, 쌀 12가마~15가마 값이었다. 한편 신문 광고면에는 후보등록 때부터 연일 입후보자 광고로 넘쳤다. 추천자들의 광고부터 출마의 변을 크게 실어 재력 과시를 하는가 하면 명함판 크기가 대종을 이루며 인근 사천 의령 하동 등지의 후보도 능력 따라 싣고 있다.

 
1952년 4월 13일자에는 후보자들의 정견발표기사가 실렸다.


후보들의 정견 발표에는 ‘난립이 가져온 폐단 여실 폭로, 내용 빈약에 청중들 실망상태(4월 13일)’라 했고, 또 신문사가 ‘계몽과 석명을 위한 좌담회’열고 그 결과를 1개면에 걸쳐 보도(4월 23일자)했다. ‘불행한 주권자의 숭엄한 권리, 순결한 1표를 만전 보장하라, 누구냐? 자유분위기에 투석하는 자, 없는가? 당계(黨系)에 적서(嫡庶)의 차별대우는…’ 등의 표제에서 보듯이 분위기는 어지러웠다.


 
1952년 4월 23일자 2면에는 후보자들에 대한 좌담회를 열고 그 결과를 보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진주시의회는 5개 선거구에서 무소속 13명, 자유당 4명, 민국당 2명, 한국청년단 1명이 당선되어 의장에 문해술(민국당), 시장에 문우상(무소속)을 간선으로 뽑았다. 진양군은 356명이 출마해 185명(면별 11~12명)이 당선되어 그들이 각각 면장을 뽑았다. 진주시 경우 도의원은 10명이 출마해 김용진과 김인중이 당선되었다. 둘 다 자유당이었다.

그러나 선거는 ‘백일하에 확인된 진주 선거사범 개황, 금권만능의 반민주성에 민중의분 충천, 국법 유린한 선량 의의 나변? 파사현정의 추상대도(秋霜大刀)로 사직(司直)하라’(5월 9일자)에서 보듯 금권은 말할 것도 없고, 유권자 등록 누락, 허위등록, 대리투표, 공개투표에 협박 공갈 등의 난맥상을 보여 공명선거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년이면 지방선거 66년, 중간에 쉬긴 했지만 ‘공명선거’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장일영 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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