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1)
  • 경남일보
  • 승인 2017.10.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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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1)

짐작해도 능히 할 수 있는 여자들의 고충이어서 여인의 말을 맥이나 끊이지 않게 응대하며 관심을 갖고 경청했다. 어머니 시대와 달라진 세태풍조가 이미 이 한적한 소도시까지 밀려왔다. 능력위주, 경제위주, 개인위주에다 여성들의 수태불감과 임신기피까지 아울러.

“우리 때는 제 몸으로 낳은 자식 때문에 제 인생을 다 바치다시피 했는데 이것도 시대 탓을 해야 될지, 참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는 전적으로 여사님이 돌보셨고요?”

“그렇지요. 아이 엄마는 훌쩍 떠났으니 외할머니인 친구하고 저하고 차지가 됐지만 인형도 아닌 어린애가 몸이라도 아프면 우리는 병원 밖에 믿을 데가 더 있나요. 이러다가 허무공덕으로 나중 원망만 듣게 될라 애태우다가 본가에는 손이 귀한 집이라니 그쪽으로 데려다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 일치를 보았지요.”

“아기 아버지는 뭐라고 했어요?”

“아기 아버지는 영국인가 어딘가로 먼저 떠났는데 벌써부터 연락이 안 되었고요.”

“어머나, 어쩜 그런 일이 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부모한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우리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아무리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세상이라지만 성금하게 할 일이 따로 있는데. 아이 엄마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혼인관계 서류도 정리 된 모양이던데요. 남편은 아직 요지부동으로 한국 풍속을 따르는데 각시는 또 각시 대로 제 뜻이 너무 확실하고 똑똑하니, 우리 때 같으면 이냥저냥 참으면서 살았겠지만 언젠가는 갈라서게 마련된 부부였지요. 이대로 가면 우리들 손자 세대에는 어떻게 될지 지금 생각으로는 상상이 안돼요. 기계문명 따라서 사람들도 모두 기계처럼 되고 말지, 안고 있는 아이야 물론 여기 어른들이 잘 키우시겠지만 차타고 내려오는 내내 무섭고 끔찍한 생각 밖에 안 들었다면 제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하시겠지요? 다행히 말이 통하는 고모님을 만나서 속이라도 툭 털어놓으니 좀 시원하기는 합니다만…….”

“언젠가 우리나라도 서양식 사고방식으로 생활패턴이 변화될 것은 예상했지만 벌써 이렇게 빨리…….”

답을 원하지도 않은 양지의 혼잣소리에 여인이 대뜸 토를 달았다.

“어디 난 서울이라니요. 젊은 사람들은 벌써 많이 달라졌어요.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지만 비행기타고 직접 외국 나가서 배운 사람들 아닙니까. 사실 우리들 나이 먹은 사람들 머리로는 가닥이 안 잡히지요.”

양지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오빠는 오늘 양지가 정리해준 서류를 들고 ‘형평운동선양회’ 발기인 모임에 나갔다.

“애기 엄마가 아이를 다시 품어 들일 생각이 없어 어려운 걸음을 하신거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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