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2)
  • 경남일보
  • 승인 2017.10.3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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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2)

“지금까지는 가망이 없었으니까요. 철부지 여고생이 ‘베이비박스’엔가 내버리고 간 아이를 나이 들어서 다시 찾아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외국으로 어디 먼 곳으로 입양이나 보내버리고 나면 때는 늦은데 어디서 찾겠어요. 저네 친정엄마도 나도 차라리 제 본가로 데려다 주는 게 옳다는 결론으로 냅뛴 걸음입니다.”

“생활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갖출 건 다 갖춘 지성인 부모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아이한테 저지른 거지요. 이제야 말이지만 본가로 데려 오신 건 그나마 어른들답게 내린 결론이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먼저 일어설게요. 그렇잖아도 아들 며느리 사이가 순조롭지 못한 눈치는 채고 있는 것 같았지만 결정적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생기다니. 이 집 어른들은 또 졸지에 몰아닥친 충격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요.”

오빠의 가게로 돌아 온 양지는 하 씨의 입단속부터 시켰다. 다음은 오빠의 가족들 눈에 띄기 전에 아기를 우선 수연이 양모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소나기는 우신 피하고 봐야했다. 고종오빠는 그나마 충격을 완화시킬 충분한 도량을 가진 분이지만 투병 중인 고종올케가 맞닥뜨리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양지는 제 선에서 우선 급한 파도는 막아보는 것이 저의 도리라는 작심을 했다.

양지가 돌아오자 충격과 실망으로 탈기한 채 일손을 놓고 앉아있던 하 씨가 벌떡 일어서며 항의하듯 날선 음성으로 마치 공범을 대하는 것처럼 내쏘았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십니더. 내 환갑이 다되도록 살아도 이런 얼척 없는 일을 첨입니더. 혹여 먹고 살기 힘들어서 수양아들이나 딸로 주는 경우는 있어도 이런 경우는 없지요. 이 집 사람들 뭐이 없십니꺼. 재산이 없십니꺼, 시어른들이 나쁜 소리 듣는 사람들입니꺼. 내가 알기로 장학금 으로 내는 돈이 얼마나 되는 줄 압니꺼? 또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보내는 돈은 요. 이런 일은 있는 사람이라고 아무나 하는 일 아입니더. 이런 집에 이런 일이 있다니 세상천지에 공부는 뭐할라꼬 하고 좋은 직장 가지고 돈은 뭐할라꼬 벌입니꺼. 나는 당최 이해가 안됩니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하 씨는 계속 허둥거리다 놓고 있던 일손을 다시 잡았지만 평소대로 놀리던 손길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다가 손에 든 칼로 탁탁 헛도마질도 했다. 그러다 돌연 양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를 뭐라 하고 ㅤㅁㅐㅌㅤㄱㅣㅆ십니꺼? 고아라꼬 아무케나 대우 받을 애기가 아인데.”

“아저씨 그 말씀도 참 듣기 감사합니더. 제 조카 부부가 외국유학을 가는 바람에 잠시 떼놓고 간 거라고 하니까 참 공부 그게 뭔지 하면서, 엄마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 돼서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게 예쁘게 잘 키아줄 사람 찾아보자 하면서 귀저기부터 살피고 우유 준비까지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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