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3)
  • 경남일보
  • 승인 2017.10.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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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3)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 회장님이나 사모님 아무한테도 말해서 안 되고, 아저씨하고 저하고만 아는 비밀로 해야됩니더. 적당한 때가 되면,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 아저씨는 다른 걱정 마시고 비밀만 철저히 지켜주시면 됩니더.”

“묵고 사는 걱정이 쪼맨 풀리는가 싶으니 참 별일도 생깁니더. 그 동안 회장님 내외 눈치를 보고 어느 정도 거니는 채고 있었지만 참, 우리가 볼 때는 기럽은기 없는 사람들이 와 이라는지, 이라다가 세상 망쪼가 드는 기 아인가, 환장할 정도로 두렵십니더.”

“아저씨 심정을 저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육지에 사는 짐승과 물속에 사는 짐승이 자기네 생활방식이나 생각이 다르듯이 우리 역시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하죠.”

예를 든 양지의 설명을 얼른 이해 안 되는 표정으로 무르춤한 채 서있던 그는 다시 일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내 손을 놓고 돌아 섰다. 아무래도 크게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사모님이 아직 친정에서 안돌아 오시서 그런 다행이 없심더.”

“손님이라도 누가 들을지 모르니까 우리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잊어버려요.”

“하도 뜻밖이라서 지붕에서 꺼꿀로 떨어진 것 매이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하여튼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은께, 어서 어른들 쎄기는 거는 빨리 해결을 하이소.”

“그럴께요. 때 되면 제가 말씀 드릴테니까 우리들 약속이나 잘 지켜주이소.”

“그람요. 시키는 대로 해야지예 걱정 마이소.”

양지의 전직까지 아는 하 씨는 양지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신뢰하고 약속 지킬 뜻을 내비쳤다. 남의 정육점에서 피 묻은 작업복이나 입고 일하는 자기를 얕보지 않고 언제나 경칭을 쓰는 양지에게 감동한 뜻을 여러 번 내비쳤던 사람이라 양지도 믿을 만했다.

하 씨가 잘라주는 고기를 들고 가게를 막 나서던 양지는 하마터면 막 들어서던 오빠와 마주칠 뻔했다. 오빠의 환한 표정은 하는 일의 진척 상황을 대변하고 있음이리라. 당황함을 감추느라 양지가 먼저 말을 걸었다.

“회합은 잘 끝났어요?”

“그게 그리 단번에 결론을 낼 일은 아닌께. 도리깨질 키질로 알곡이 몽글리듯이 차츰 실속을 갖춰야지. 관계없던 학자나 유지들 몇도 우리들 취지에 흔쾌한 동의를 하고 동참하기로 했으니 전망은 아주 밝아. 동생이 해준 취지문도 잘됐다고들 하는데 기분이 아주 좋았고.”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지 모른 채 기분 좋아하는 오빠를 바로보기 민망스러운 양지는 자꾸 안쓰러워지는 가슴을 달랬다.

“오빠가 그만큼 애쓰시는데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십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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