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4)
  • 경남일보
  • 승인 2017.10.3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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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4)

“핫하하하. 동생한테 그런 공치사를 미리 듣다니 얼굴이 맨작시러서 못 듣겠네.”

양지가 하 씨와 내밀한 눈도장을 찍지만 눈치 챌 리 없는 오빠는 맛있는 저녁을 살테니 먹고 가라고 한다. 양지는 오빠의 저 자신감 있고 환한 일상을 자신이 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고 싶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후, 새끼 낳은 소를 돌보고 있는데 고종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에 없이 돌올한 오빠의 음성에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으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들켰구나. 하 씨는 어쩌다가 약속을 파기하게 되었을까. 대체 어떤 방법으로 수습을 해야 될까.

“동생이 어서 좀 와야것어.”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우중충하게 내려앉아있는 하늘을 보게 되었다. 저 하늘. 그러면 그렇지. 내 하늘은 언제나 흐렸었지. 아까까지도 무심하게 봐왔던 흐린 하늘이었지만 의식하는 순간 그 하늘이 흐려있는 것이 무슨 전조처럼 또 마음에 걸렸다. 어디로든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싶은 이런 순간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연이어져 있는 것일까. 양지는 졸아든 낮은 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어 분위기 탐색을 했다.

“혹시 하 씨 아저씨 옆에 계십니꺼?”

“아니, 배달가고 없는데 와?”

“그래예? 그럼 혹시 또 귀남언니가 ......?”

우선 걱정하던 일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안심이 됐다. 하지만 말썽의 지뢰는 또 있었다.

“아, 아이네. 언니 땜에 엔간히 쏙을 ㅤㅆㅔㄱ히니깨 인제 솥뚜껑만 봐도 놀래재?”

“오빠 저 정말 한 발짝도 여기서 움직이기 싫으니까 오빠 선에서 해결해 주세요. 무슨 일 인진 모르지만. 저 지금 축사에서 송아지 돌보고 있거든예.”

“거참, 귀남이 동생 일이 아니라니깨 그라네. 하이튼 잠깐 자네가 직접 와야것어. 젊은 손님이 하나 왔는데 자네를 찾는 거는 분명한데 도통 맥이 안 통하는 말만 함서 이모를 꼭 만내야 한다네. 전화로 몇 마디 주고받아서 될 일이 아인께 어서 내려오시기나 해.”

기가 막힌 양지는 혼자 헛웃음을 웃었다. 더군다나 뜬금없는 젊은 손님이라니. 아버지도 있고 호남이도 있는데 굳이 자기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싫다는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고종오빠. ‘누가 뭐래도 자네는 맏자식 아닌가. 똥뎅이도 맏똥뎅이가 낫다고 옛말이 거저 맹글어졌겠나’

양지는 무거운 마음으로 외출복을 갈아입자니 온 몸이 쥐가 내린 듯 불편하고 뻣뻣했다. 하늘을 이고 있는 것조차 버겁고 지난스러운 사람에게 다시 어떤 상황이 손짓을 한다. 물러서고 도망 갈 수도 없다. 부모도 인정 해주지 않았던 딸자식이지만 이제는 맏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상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간여하게 되는 상황이 종종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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