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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명분과 이웃간 의리차정호 기자(취재부 지역팀·국장대우)
차정호 기자  |  chajh5678@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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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5  21: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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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건설 시작은 남해군이다. 60년대 13만 남해군민들은 육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교통수단을 원했고 그것이 다리였으며,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당시 군민들은 아예 생각도 못할 몽상이었지만 그 꿈은, 기적은 이뤄졌다. 섬 생활의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섬사람들의 목소리가 남해군 전체를 움직였고, 각고한 노력 끝으로 남해대교라는 다리가 건설되었다.

1973년 남해군민들의 생활상으로 돌아가 보면 이렇다. 폭풍우 치는 날은 당연했거니와 바람이 불거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날에는 육지로 가는 뱃길은 끊어진다. 남해와 하동군을 가로 막고 있는 660여m의 해협 때문이다. 이 거리를 두고 궂은 날씨에는 남해읍에서 노량까지 왔다가 다시 읍으로 되돌아가 하루 또는 2~3일을 하늘만 바라보다가 그 600m 해협을 어선을 이용해 건너갔다. 그들 중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은 물건 구매를, 학생들은 등교를, 공무원들은 도청으로 출장을 떠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불과 660m의 해협이 가로막아 학생들은 결석처리, 공무원들은 서류 미등록 사태라는 손해를 입고 살았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육지인들 스스로 자진해서 남해군민들의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서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섰나? 그런 적이 있었나? 남해군민들이 꼭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힘을 한데 모아 이루어 낸 결과물이 아니었던가?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

몇 번을 고쳐 생각해봐도 다리는 남해군민들이 필요한 다리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육지인들이 다리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의 입지를 부각시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그들의 생활과 남해인들의 생활을 1년만 바꾸어 살아 본다면 그러한 이기주의적인 형태는 피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리는 남해인들이 필요한 다리다. 그래서 육지인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방학이 시작되면 고향으로 온다. 당시에는 부산과 여수를 다니던 큰 배들을 이용해 삼천포를 거쳐 7~8시간의 긴 항해 끝에 남해 노량에 닿는다. 그것도 항구가 조성되어 있지 않아 해협 한 가운데쯤에 배를 머물게 하는 바람에 작은 어선을 이용해 그 배까지 다가가서 승선을 한다. 바람이 심하면 하동 쪽에다 하선을 시키고는 가버린다.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작은 어선과 함께 파도가 심한 해협을 건너간다, 목숨을 담보로. 그래서 목숨을 잃은 이들도 많았다. 값은 엄청 비쌌지만. 자연스레 남해군민들은 다리의 건설을 원했고 남해인들의 실력으로 다리가 건설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경남도도 망설일 이유도 없다고 본다.

100년 목표로 설계가 되었다는 남해대교지만 이용 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피로도가 누적되어 소량의 차량들만 통과시키는 역할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은 다리가 지금의 다리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 명칭을 제2남해대교로 명명해질 줄 알았다. 이 다리를 만들기 위해 남해인들은 십 수년 전부터 노력해 왔었다. 그 기간 중에 하동군에서 이 다리의 건설을 위해 힘을 보탰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명칭을 가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 아니라 완공 후 서로 편리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동군은 남해군의 평생이웃 이고 평생 동지가 아닌가.

 
차정호기자(취재부 지역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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