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5)
  • 경남일보
  • 승인 2017.10.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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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5)

더구나 귀남이며 수연이, 이제는 오빠의 어린 손자까지 연결된 복잡한 끈으로 양지는 거의 온몸을 결박당한 기분이다.

정육점이 저만큼 보이고 지육을 들고 들락날락하는 고종오빠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전화 속 여운으로 부풀려 낸 양지의 온갖 궁금증이 긴장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 왔어?”

숙련된 손길로 지육의 갈비뼈를 발겨내고 있던 오빠가 피 묻은 장갑을 벗으면서 돌아섰다. 그리고 문안으로 보내는 눈길로 찾아 온 손님을 가리켰다. 얼마나 먼 길을 헤쳐 왔을까 싶은 팍팍함이 단번에 읽혀지는 몰골의 등을 가진 남자 하나가 앉아있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실팍한 등줄기가 후줄근한 주제꼴의 초라함을 그나마 덜어주고 있다.

오빠 이외의 기척을 느낀 상대가 황황하게 일어섰다. 체격에 비해서 풋복숭아 같은 미숙함이 완연하게 드러나 보이는 앳된 얼굴의 소년이다. 소년의 무릎에 걸려서 탁자가 흔들리는 서슬에 먹고 있던 자장면 그릇이 기우뚱 굴러 떨어질 찰나인데 재빨리 잡아서 제자리에다 바로 놓는 동작이 여간 민첩한 게 아니다. 양지를 일별한 소년이 고종오빠를 보고 묻는다.

“저희 이모님이십니꺼?”

“그래 이 분이 네가 찾는다는 최 쾌남 씨고, 그 동생이 최 호남이고 또 최 귀남이라는 이모도 있다꼬, 외할아부지가 가끔 가시는 갑던데 말씀 안하시더나?”

오빠의 소개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이 왈칵 양지의 손을 잡았다. 어리둥절한 양지의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소년이 부르짖었다.

“이모-”

굵은 눈물방울을 매단 소년의 눈동자가 감격으로 떨고 있다. 벅찬 감정의 격앙으로 소년에게 움켜잡힌 양지의 손이 아프도록 욱죄어들었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양지의 손을 잡고 소년은 계속 흐느꼈다. 이모라니? 양지의 눈길이 얼른 납득 안 되는 답을 먼저 얻기 위해 오빠께로 돌아갔다.

“한실서 왔단다.”

한실. 그제야 귀에 익은 지명이 얼른 떠올랐다. 귀남언니와 상관없는 것도 마음을 가볍게 했고 튼실해 보이는 소년의 싱그러운 존재감이 우울한 기분을 삽시간에 날려버리게 했다.

“자, 자, 우선 먹든 음식이나 마저 먹고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양지가 울먹이는 소년의 등을 다독거리면서 자리에 앉히자 소년은 다시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문득 이 아이 때쯤의 그 서울에서 고픈 뱃속으로 자장면을 우겨넣던 제 모습이 얼비친 나머지 옆에 놓인 단무지 접시를 공연히 옮겨주기도 했다. 돌아보니 담배를 피우는 오빠의 얼굴이 담담하게 굳어있었다. 오빠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결코 밝거나 쉽지 않은 어떤 예감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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