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6)
  • 경남일보
  • 승인 2017.10.3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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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6)

“몇 번이나 여기를 왔던 모양인데 못 찾았대.”

아버지가 아들을 얻었다던 그때의 당혹감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굶주린 자의 악기처럼 그릇 바닥까지 닥닥 긁어가며 음식을 쓸어먹고 있는 저 아이. 만나러 온 내용은 무엇일까. 양지의 심중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입에 문 담배를 뽑아들면서 오빠가 입을 열었다.

“용남이 동생 아들이란다.”

짐작하던 바였지만 막상 듣고 보니 맞닥뜨릴 문제에 대한 압박감으로 긴장이 먼저 된다.

“변소는 어데 있습니꺼?”

고픈 배를 음식과 물로 포식을 한 아이가 트림을 하며 물었다.

“응 이걸 가지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이층에 있다.”

계산대 옆에 있는 화장지를 내려주며 오빠가 손짓하는 곳으로 소년이 멀어졌다.

“용남이 동생이 신장 이식을 해야 된단다. 가족들 모두 검사를 했는데 적합 판정이 안 나와서 저 애가 이모들을 찾아 나섰단다.”

양지는 턱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취로 인한 혼수상태에서 자신도 몰래 메스가 배를 가르고 장기를 잘라 내간다. 참 돌출적이고 어이없이 맞게 된 요청. 이모가 셋이나 되니 아이는 가능성 높은 길을 나선 것이다. 뜻을 모으고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고. 남도 아닌데. 순간 어미를 구하겠다고 나설 자식을 둔 용남언니가 부럽다는 생각도 뒤따랐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호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 일이냐고 호남이 물었지만 그냥 보고 싶어서라고 농담으로 둘러대며 돌아올 날짜만 확인했다.

그날 밤 내내 양지는 괴로웠다. 연신 물을 마셨다. 그렇지만 속마음을 태우는 갈증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모자라는 부모를 대신한 조부모의 손길에서 자라난 아이. 그 아이가 용남의 아들이라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뒤틀린 사지를 뒤꼬면서 병고에 시달리는 제 어미를 붙들고 내가 살려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아이. 그 아이가 저기 누워서 편안한 잠을 자고 있는 것을 양지는 보고 있었다. 겹겹이 덮어 씌워진 먼지만 제거했는데 청소년의 모습은 저렇게 빛이 나고 싱싱하다. 그것은 어린 싹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충일한 기상이다. 사람의 싹, 용남의 이세.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부모 형제들의 기억에서조차 일찌감치 멀어져 버린 용남이 되살아 난 것이나 다름없다. 후손의 몸을 빌려 눈부신 진화와 부활을 해보인 용남. 그런 예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서 이세를 낳고 기르는 것이 사람들의 습성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을 같이 있었을 뿐이지만 탐탁해진 신뢰감이 품어 안고 싶도록 아이가 가깝게 느껴졌다. 솜털이 보송한 살결을 어루만지면 줄기차게 벌떡이는 혈맥이 머잖아서 청년이 될 몸인 것을 감지시켜 줄 것이다. 떡 버티고 서서 용을 쓰면 용틀임 하듯이 불끈불끈 일어 설 근육은 또 얼마나 듬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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