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기획/특집
[역사페이지] 소녀와 할머니 (2)소녀일까, 할머니일까, 정의비의 사연
김지원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1.22  06:00:4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사무실에는 정의 비 작은 모형이 있다.
“소녀여야 했어요.” 김운성 작가가 말했다.

당시 피해자로 끌려간 여인들은 많게는 30대까지 있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혼과 미혼을 가리지 않았고, 이른바 양반·평민도 선별조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들은 민족적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강력한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현재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공식 등록된 사람은 모두 239명이다. 정부에서 추정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대략 8만에서 20만명에 이른다. 실제 등록 피해자가 적은 이유는 피해 당사자들의 ‘침묵’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추세다. 강제로 끌려가 당한 일이지만 ‘내가 그 피해자 였다’고 증언하는 일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부 차원의 피해자 조사도 한참 늦었다. 1992년에 이르러서야 ‘정신대 실무 대책반’을 꾸려 피해자 조사를 실시했다. 광복 이후 혼란했던 한국의 대·내외 정세를 감안 하더라도 너무 늦은 조사였다. 고령이었던 피해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등록 피해자들은 16~17세에 끌려간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를 10대 소녀로 떠올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 통영거제시민모임 송도자 대표가 정의비 건립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왜 소녀여야만 합니까?” 라고 묻는 이가 있었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통영거제시민모임) 송도자 대표다. 2002년 8월15일 창립한 통영거제시민모임은 경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긴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다. 1995년 즈음 송 대표는 우연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원활동을 시작해 통영거제시민모임을 꾸려오고 있다.

통영은 전국에서 단일지역 피해 등록자가 가장 많았다. 모두 6명이던 통영지역 피해자는 이제 올해 백수를 맞은 김복득 할머니 한 분만 생존해 있다. 통영지역에 거주하는 피해 할머니들은 모두 친자식이 없었다. 참혹한 세월을 견디고 돌아왔지만 고국에서의 삶도 평탄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피해 할머니들이 결혼하고 자식낳고 사는 평범한 삶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다 돌아가셨다.

송 대표는 “수요시위 등 대외활동에 익숙한 나눔의 집 거주 피해 할머니들에 비해 지역의 피해자들은 사회적으로 관심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굴레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의 주목 역시 나눔의 집이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행사로 쏠리기 마련이어서 지역에서의 활동은 오히려 쉽지 않은 편이라고 지역단체들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통영지역의 위안부 기림비 사업은 2012년부터 추진됐다. 애초 통영거제시민모임은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와 기록을 보존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의 장이 될 역사관 건립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경남지역은 전국적으로도 피해자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이다. 등록 피해자만 해도 31%로 가장 많았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대해 경남지역은 당위성, 역사성의 면에서 적합했고 명문 또한 있었다. 통영에 거주하고 있는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도 역사관 건립에 2000만원을 기부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당시 김두관 경남도지사 시절, 경남도와의 협력으로 원만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였던 역사관 건립사업은 도지사의 공석과 함께 흐지부지 보류되고 말았다. 경남지역 피해자 조사에 열을 올리던 통영거제시민모임 입장에서도 김이 빠지는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역사관 건립이 보류되고 통영거제시민모임은 기림비 사업에 집중했다. 2012년부터 7월부터 시작된 기림 비석 조성을 위한 모금운동은 지역시민의 뜨거운 호응 속에 순조롭게 진행됐다.

기림비 사업에 주력한지 9개월만인 2013년 4월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비가 제막됐다. 3000여 만원의 시민 모금과 통영시 지원(1000만원)으로 건립사업이 추진됐고, 제막식에 경남도 지원(1000만원)이 추가됐다.

시민모금으로 진행한 기림비 사업의 투명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기림비 디자인을 공모한 결과 1차 공모에서는 선정작을 뽑지 못하고, 2차 공모를 통해 한진섭 조각가의 ‘정의 비’(正義碑)가 선정됐다.

송 대표는 “1차 공모에서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브론즈 작품들이 접수돼 선정작을 뽑지 못했다”고 했다. 송 대표는 ‘소녀’ 이미지가 아닌 현재의 디자인이 선정된 것에 대해 긴 설명을 곁들였다.

“‘평화의 소녀상’은 훌륭한 디자인이다. 인상적이고 의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런데 그 ‘소녀상’ 만을 반복생산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피해자는 소녀’ 라는 공식을 낳게 된다. 물론 10대 소녀 피해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20대, 많게는 30대까지 끌려간 피해자들이 있다. 피해자 소녀로 국한시키는 것은 민족적 분노를 더욱 자극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위안부 피해 문제를 일제가 한민족을 향해 저지른 만행이라는 식의 한쪽 면만 보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무차별적으로 끌려간 피해자들은 결국 여성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위안부 피해여성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어서 송 대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특히 소녀=처녀로 규정되는 ‘순결의 훼손’이라는 가부장적 인식은 여성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군 위안부’ 문제에서 피해야 할 인식이라는 주장이었다. 여성이어서 피해를 당한 일을 놓고, 처녀의 순결성을 잃었다는 식의 접근은 남성우월주의 헤게모니의 발현일 수 있다는 논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통영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정의비가 소녀라고도, 할머니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모습을 한 이유다. 특별한 헤어스타일 없이 둥글둥글한 머리와 엷은 미소를 띈 얼굴의 ‘누구’라고 정의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인의 모습이 통영 정의비의 특징이다. 소맷자락은 한복의 그것이어서 둥글게 휘어진 모양이고 치맛단도 손 끝도 둥글둥글한 모습이다.

 
   
▲ 정의비가 세워진 작은 공간 앞에 정의비와 같은 소재로 새겨진 안내표지석.



송 대표는 또 하나,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위안부의 피해의 역사가 새겨져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소녀상’의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다양한 작가들의 참여를 사전에 차단하게 되는 방식의 일방적인 소녀상 세우기에는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2015년 12월28일 한일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졸속 타결되면서 전국적으로 기림비 제작 바람이 일었고 대부분의 지역에 ‘소녀상’이 선택돼 세워졌다. 송 대표는 ‘피해자=소녀’라는 획일적 디자인으로 역사적 오류가 확대 재생산 될 것을 우려했다.

‘소녀상’의 조각가인 김운성·김서경 작가 역시 지역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세웠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녀상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어슷비슷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었다. 사전에 작가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디자인 협력을 하는 과정이 없이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이름마저 ‘소녀상’이라고 지어 세운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작업이 엉뚱한 데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꼴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통영지역은 정의비를 선택했다. 모금기간은 2012년 7월부터 2013년 4월 30일. 통영과 거제시 일원에서 시민과 전국민 대상으로 진행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금, 거리 캠페인도 병행했다. 경남도교육청, 통영교육지원청, 일선학교의 동참도 활발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정의비건립위원회를 꾸려 통영시와 경남도의 지원도 끌어냈다.

정의비는 통영시 남망산 조각공원에 위치해있다. 강구안에 설치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논란 끝에 남망산 조각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상단은 여성의 모습을 한 반추상적 이미지의 전신상이 올려져 있고 하단에는 모금에 참여한 기부자들 명단, 취지문, 건립계획서, 진행일지 등을 넣은 타임캡슐을 넣었다. 하단 아래는 원형 기단석이 있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이미지화해 원형으로 배치했다. 피해자들의 강제동원과 피해실태를 기록한 일본군 문서와 사진, 피해자들의 정의의 외침을 시대순으로 스토리텔링 했다. 정면 바닥에는 비문을 새겼다.

정의비는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다. 송 대표는 “정의비의 모습은 피해자들의 정의로움과 당당한 외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를 바라며 화해의 손짓을 담은 이미지다. 모든 여성피해자들을 감싸 안으며 전쟁과 폭력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추구하는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남망산 조각공원 초입에 위치한 통영시민문화회관 앞, 포석을 깐 작은 공간에 정의비가 서있다. 바닥 틈 사이사이마다 질경이가 자라난 모습이 한맺힌 여인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정의비는 산 아래 강구안을 뒤로하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방향으로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안내판이 울타리처럼 펼쳐져 있다.

정의비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강구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망산조각공원 쪽으로 올라가도 되고, 조각공원 바로 아래에도 주차장이 있다. 시민문화회관 입구까지 차가 올라가긴 하지만 주차장은 좁은 편이라 차를 두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남망산 이라고는 하지만 높지않은 곳이고, 정의비는 조각공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있어 전혀 힘들지 않다.

정의비와 인증샷을 남겼다면 강구안의 명물 거북선 모형이나 시장 뒤편으로 올라가는 동피랑의 벽화구경도 좋다. 시장에는 펄쩍펄쩍 뛰는 싱싱한 생선들이 즐비하다. 두어가게마다 한번씩 등장하는 충무김밥집은 어느집을 골라잡아도 ‘원조’충무김밥이다. 달콤함의 대명사 통영꿀빵도 관광객들에게 필수 쇼핑품목이 된지 오래다.

 

   
▲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에 정의비가 세워져 있다.


위안부 피해자 전수조사 작업 한창 진행

통영거제시민모임은 두가지 눈에 띄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경남지역 위안부 피해자 전수조사이다. 1992년 위안부 피해자 등록사업은 피해자 스스로가 나선 경우가 아니면 규모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조사됐다.

통영거제 시민모임은 중국, 대만, 태국 등지의 문서기록과 미군 포로수용소 문서 등을 뒤져 피해자를 찾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각 지역 읍면동사무소 제적부, 각급학교 학적부, 졸업명부 등을 일일이 뒤지며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내는 사업이다. 해외의 문서자료에서 지역 출신자를 찾아 호적부 등을 통해 확인하고 주변의 구술로 새로 80여분의 피해자를 찾아내기도 했다. 직접 목격한 주변인들의 증언은 ‘누구네 딸이 끌려갔다왔다’는 등의 구체적인 진술을 포함하고 있다. 학적부 등에는 “○○은 가정이 어려워 정신대로 갔다”는 식의 기록이 발견된다는 것이었다. 통영거제 시민모임은 전수조사를 진주·사천지역까지 확대하고 있다.

송 대표는 전수조사는 방대한 자료를 일일이 발품 팔아 찾아다녀야 하는 지난한 임무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피해 당사자가 고령에 접어든 것도 문제지만,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줄 주변인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어 국가차원에서 인력을 투입해 집중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각종 문서를 통한 정보를 찾는 작업은 개인정보와 연관되는 일이라 정부차원의 협조가 없으면 개인, 단체에서 진행하기란 한계가 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피해자 전수조사가 진행되던 중 12·28합의가 이뤄지는 바람에 한때 조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올해도 조사 작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이었다. 송 대표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로 정부에서 일을 안했다. 정부가 바뀌었으니 기대하고 있다. 기록화 하는 작업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우선은 잘못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바로잡는 일이 급하다”고 했다.

유엔 탄원엽서·세계기록유산 등재 작업도 꾸준히 진행

다른 하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와 관련한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난달 31일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됐다. 2016년 5월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등 9개국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다. 당연히 일본은 이것을 반대했고 이번에 유네스코 분담금 지불을 거부하며 기록물 등재를 보류시켰다. 일본은 심사에 관한 규정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개정하도록 압력을 넣어 심사규정 개혁안까지 통과시켜 둔 상태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 보류는 심사규정 개혁안을 적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이와 관련해 2010년부터 탄원엽서 보내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유엔에 위안부 문제 해결 탄원을 위한 엽서만들기는 교육단체의 호응을 얻어 경남·부산지역에서 엽서만들기에 동참이 이어졌다. 탄원엽서 작업에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엽서쓰기는 물론 해외에 자료를 보내기 위한 번역작업도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모인 엽서를 1차로 일본 의회에, 2차로 일본 아베 수상에게, 3차로 유엔 제네바 인권고등판무관에게 발송했다. 송 대표는 “아베 수상에게 발송한 엽서는 뜯어보지도 않고 반송되었다”고 전했다. 올해 4차로 유엔본부에 직접 방문해 전달할 계획으로 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현재 8만여통의 엽서가 들어와 있다고 했다.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김지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