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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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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9  22: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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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8)

다음 날 양지는 용재를 따라 한실로 향했다. 호남을 만나기 전이라 아직 이렇다 할 의논이 된 것은 없지만 아이만 혼자 보내기보다 그쪽 상황도 알아볼 겸 일차 방문을 해봐야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이차적인 역할도 계획할 수 있을 터였다.

양지는 지금 어릴 때 자라던 곳과 별로 다르지 않은 농촌 길을 가고 있지만 왠지 낯설고 서먹하기만 하다. 버려지다 시피한 제 어미를 구하고자하는 어린 소년의 열성에 대한 예의만 아니라면 이렇게 씁쓸하고 어수선한 길을 혼자 나서지 않았을 거였다. 피붙이든 뭐든 자망으로 주위를 챙기지 못한 불찰이 불구스럽게 그녀를 위축시켰다. 손자들을 보기 위해 아버지는 간간히 용남언니네를 찾아다닌 것을 앞서 가는 용재를 통해서 확인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아이가 가는 대로 따라서 묵묵히 발길을 옮기는데 콧날이 먹먹해졌다.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 저 어린 것이 감수하고 왔을 온갖 고통과 시름을 그냥 외면할 수 없어서, 정말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따라 오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결코 저버릴 수 없도록 이 산하가 너무 진중하게 양지 자신을 끌어들이고 있다. 운명적인 어떤 예감이 도망치거나 회피할 수 없도록 미로 속에다 자신을 몰아넣고 있다는 느낌도 씻어버릴 수 없었다.

응원군을 몰고 오는 소년 병사처럼 고민으로 찌들었던 어제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이는 신이 났다. 그러나 양지는 온전하지 못한 부모를 중심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겉만 저러할 뿐 그들의 현실은 너무나 비참한 형국일지도 모른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인간 이하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학교 이학년인 아이의 언행은 결손 가정의 아이라고만 생각하는 양지의 편견을 자꾸 흔들어 놓는다. 청노루처럼 껑충 풀숲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서는 잘 익은 머루 한 움큼을 따서 내민다. 그런가하면 알록달록 현란한 몸치장을 하고 있는 호랑나비를 잡아서 양지의 앞가슴에 브로치로 붙여주며 하하하 즐겁게 웃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랑 이러고 다니는 거야?”

양지가 묻자 아이는 씨익 웃는다.

“집에서 일 하다보면 늘 같이 다니지는 못 해예. 어떤 때는 밀서리도 하고 삼굿해서 감자도 구워먹었다꼬 ㅤㅈㅢㅤ들끼리 재미있었던 일 자랑하는 거 들으면 샘도 나요. 그렇지만 주인한테 잡혀가서 돈 물어주고 혼나지 않았을 때는 어서 일하라고 조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마운 생각도 들고예.”

양지는 모처럼 빙긋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아이들 커가는 모습은 저토록 비슷할까. 남의 물건 손대면 안 되고 눈총 받을 짓하면 안 된다는 훈육을 엄하게 받는 가운데서도 금기된 선을 넘는 아슬아슬한 재미는 얼마나 살맛나는 쟁그라운 즐거움이던가.

버스에서 내린지 벌써 한 참 되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하던 게 언젠데 동네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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