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지와 18항아리 교육
최석찬((사)한국서예협회 진주지부장)
왕희지와 18항아리 교육
최석찬((사)한국서예협회 진주지부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11.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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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찬

중국의 시사에 시성(詩聖) 두보가 있다면, 서예사에는 왕희지(王羲之)가 있다. 왕희지는 동진시대 정치가이자 서예가로 실용성 위주의 서예를 예술적 서체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중국 서예사에서 가장 위대한 서예가로 추앙 받으며 후인들에 의해 서성(書聖)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에 얽힌 일화는 많이 전해져 오는데, 그 중 헌지와 18개의 항아리 이야기는 엄격한 자녀교육으로 명문가의 명예를 드높인 것으로 유명하다.

왕희지는 일곱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막내인 헌지가 특히 재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자만심에 빠져 글쓰기 공부를 게을리 했다. 그래서 날마다 아버지의 필체를 본받아 익히도록 했다.

몇 년 후 아들 헌지가 그간 연마한 자신의 필체를 보여주자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하였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선이 뻣뻣한 게 마치 나무막대로 그은 것 같다고 했다. 부모의 뜻을 알아차린 아들은 더욱 연마해 5년 후 다시 아버지께 필체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실망한 듯 큰 대(大)자의 윗 부분은 좁은 반면 아랫부분이 지나치게 넓고 허하다고 하시며 점 하나를 찍어 클 태(太)자를 만들어 주었다. 헌지가 그 글씨를 다시 어머니께 보여주자 어머니는 유심히 아들의 글씨를 살피더니 “많은 글자 중에 유독 점 하나만 아버지 필체를 쏙 닮았구나”라고 했다. 부끄러움을 느낀 헌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크게 뉘우친 헌지는 아버지에게 글씨 잘 쓰는 비법을 여쭈었고 아버지는 뜰에 있는 18개의 항아리를 가리키며 저 항아리의 물을 먹으로 갈아 비우면 된다고 했다. 이후 헌지는 18개의 항아리 물을 먹을 갈아 없어지도록 노력해 아버지 왕희지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 세상 사람들은 아버지 왕희지와 아들 헌지를 ‘이왕’(二王)이라 일컬었다.

자만심에 빠져 붓글씨 공부를 게을리 하던 아들에게 경쟁상대를 태산 같은 아버지로 설정해 주면서 아들의 발전을 도모한 부모. 라이벌 효과를 극대화한 왕희지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비단 자녀교육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길에 동반자는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동료인 동시에 때로는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라이벌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나를 발전시키는 동료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보다 뛰어난 상대를 시기하거나 동경하기보다는 자기발전을 위한 라이벌로 설정해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보다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석찬((사)한국서예협회 진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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