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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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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3  0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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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19)

이 산 모퉁이를 돌면 그만이려나 여기면 또 다른 산모퉁이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산모퉁이를 돌고 나면 또 작은 개울을 건너야 된다고 한다. 늘 그렇게 다녀서 예사인 아이는 이모 너무 멀어서 지겹고 힘들지요 묻는 법도 없다. 개울을 건너서 다시 산비탈을 감돌면 들판 여기 저기 자리 잡고 있는 비닐하우스 농장도 보인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골이니 지름길인 산 숲 샛길을 따라 이고 진 생의 짐짝을 나르던 개미행렬 같았을 주민들의 고충도 남의 일 같지 않게 옛날 기억을 몰고 온다.

시퍼런 칼로 마냥 하늘을 빗금치고 있는 것 같은 즐비한 옥수수 밭을 지나자 어머니 아버지가 그토록 염원해 마지않던 상징물인 고추밭도 넓게 펼쳐져 있다. 호박이나 가지 부추 등의 푸성귀가 자라고 있는 자잘한 남새밭 옆에는 사람이 살다버린 폐가가 쓰레기더미처럼 기울어져 있는 것도 보인다. 저 집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행복한 꿈을 성취한 즐거운 마음으로 이사를 떠났을까, 뼛골이 빠지게 일해도 부채만 늘어난다고 탄식하던 어떤 농부가 단봇집 싸서 야반도주를 한 것은 아닐까. 깨진 오지항아리 몇 개가 명색만 남아있는 장독대 옆에 뒹굴고 있는데 흐드러진 열매를 단 석류나무 하나가 제 영역을 지키는 지조의 혼처럼 꼿꼿하게 그 옆을 지키고 있다.

“이모 다리 아프죠? 진짜 참말로 쪼끔만 더 가면 돼요. 얼추 다 왔심더.”

“난 이제 네 말 못 믿겠다. 벌써 몇 번이나 그 소리 들었다.”

“참말이라요. 참말로 다왔어예.”

겸연쩍은 듯 고수머리가 밤송이처럼 쭈삣쭈삣한 제 머리를 슬슬 문지르면서 아이는 양지의 가방까지 받아서 어깨에 메더니 잘 훈련된 나귀처럼 성실한 동작으로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가고 있다. 저런 모습을 표현할 때 뒷모습이 귀엽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미소 지은 양지는 다시 군말 않고 아이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고개라고 하기는 펑퍼짐한 약간 고지대의 정점에 이르자 가느다란 산 능선에 둘러싸인 좁장한 들판이 시야로 펼쳐졌다. 발아래로 나있는 오솔길을 내려가면 인가가 있을 법 예상되는 구조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대나무밭의 우듬지가 내려다보인다. 저쪽 어디선가 왁자하게 아이들이 다투는 소리도 들려왔다. 너무 심심하게 둘이서만 먼 길을 왔기 때문에 여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반가운 한편 이제 맞닥뜨리게 될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 가슴이 묵지근해졌다.

대나무 밭 사이로 난 길을 다 내려오자 확 트인 논들이 보이고 그 논들 가운데 우뚝 선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밑에서 아이들이 뒤엉켜서 이리저리 딩굴고 있는 게 보였다. 싸우는 아이와 말리는 아이들, 구경하는 아이들로 뭉쳐있는 가운데 중년남자 하나가 끼어들더니 손을 쳐들어 한 아이를 나무라면서 때리는 것이 보였다. 그쪽을 눈여겨보고 있던 용재가 이모 잠깐만요, 하더니 던지듯이 가방을 맡겨놓고는 그쪽으로 뛰어려갔다. 용재의 날쌘 동작은 이미 그런 분위기의 내용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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